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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속 구미시장 후보 김기훈박사, “구미시민을 멍들게 한 고시(考試) 우선주의” 구미 정치 비판

김영숙기자 0 38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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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소속 기호5번 구미시장 후보  김기훈 정치학박사>


구미시민을 멍들게 한 고시(考試) 우선주의구미 정치판 비판
 
한국의 지방자치는 1991년 지방의회가 의원을 선출하는 것으로 출발하여 1995년 단체장까지 선출하게 되었다. 이 기초 지자체뿐만 아니라 광역단체장 선거에 고시출신자들이 대거 등장하게 된다. 이때까지만 해도 고시합격자라는 이유만으로 화려한 등장을 할 수 있었다. 이에 대한 김기훈 박사의 견해는
 
. 구미 역시 고시출신자들이 구미시장을 역임하면서 구미시민들은 많은 기대와 희망을 걸었습니다. 27년간 행정고시 출신자들이 구미시 행정을 장악하고 지배했습니다. 그 결과 오늘날 구미시에 무엇이 남았는지 시민들은 알 것입니다.

그들의 욕망은 끝이 없었고, 항상 낮은 곳의 시민이 아닌 더 높은 곳만 바라보고 살았으며, 더 높은 출세 길을 향해 갔습니다. 도지사를 넘어 대통령까지 바라 본 사람도 있었습니다. 인생관에서 과유불급(過猶不及)을 전혀 몰랐던 것입니다.”


 

역대 민선 구미시장관료적 권위주의 젖어 급변하는 미래를 예측하지 못했다.


기자가 듣고 보니 과연 우리 구미시의 경우, 역대 민선 구미시장은 이른 바 행정고시 출신자들이 줄곧 구미시를 이끌어 왔다. 과연 이들의 사고방식 내지 관료적 폐해에 대해 김박사께서 설명하신다면?

 

그렇습니다. 고시합격자들은 소뼈를 2~3번 우려서 곰탕을 만들어 먹듯이, 평생을 고시합격을 우려먹고 또 우려먹었습니다. 한국정치와 행정의 가장 큰 문제점을 정치학에서는 관료적 권위주의로 못 박아 놓았습니다. 경직된 사회를 만들어 자율성이 파괴되고 억제됩니다. 이것은 민주적인 사회로 가는 길에 가장 걸림돌이 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제 시대가 우주선을 타고 우주여행을 하는 시대를 맞이하게 되었는데도 고시합격을 앞장세우고 있습니다.”고 질타를 하면서 계속 말을 이었다.

고시합격을 통한 리더(leader)들은 관료적 사고방식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행정도 경영의 관점에서 바라보고 일을 진행해야 성과와 효율이 있습니다. 숲은 못보고 나무만 보고 사는 꼴이 됩니다.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만 본다면 우물 안 개구리가 됩니다. 이제는 이러한 사고방식을 시민들이 일깨워 줘야 합니다.” 고 하면서,

조선시대 과거시험은 등용문(登龍門)이라고 하는데, 중국 황하강 상류에 용문(龍門)이라는 물살이 아주 센 협곡이 있었습니다. 이 용문을 통과하면 물고기는 바로 용()이 된다는 전설이 있었지요. 그래서 어려운 과거시험을 통과한 사람을 등용문에 들었다고 했습니다.

또 하나는 중국 후한(後漢)시대에 이응(李膺)이라는 청렴한 관리가 부패하고 타락한 환관(宦官)들에 맞서 나라의 기강을 바로 잡자, 청년 관리들이 이응을 만나 교류하는 것을 등용문이라 했습니다. 이로써 알 수 있는 것은 등용문이 출세 길은 분명하며 청렴하고 겸손한 관리를 지칭하는 것은 분명하다 하겠습니다.” 고 했다.
 
 이러한 사실들을 시민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없겠습니까?

 

. 이 고시의 폐해는 조선시대에도 있었습니다. 가문의 영광과 번영의 수단이 바로 과거시험에 합격하는 것에 있었기 때문에 환갑이 다 된 아버지와 아들이 같이 공부를 했다는 문헌을 볼 때 출세를 위해 인생의 시간의 대부분을 과거시험으로 낭비했다고 봅니다.

더구나 이것보다 더 심각한 폐해는 소년 출세입니다. 본인의 성격과 행동을 망치고, 정치와 행정을 망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이 소년출세는 과거시험에 합격하자마자 출세 길이 열림으로서 평범한 사람들이 겪는 어려움을 모르기 때문에 생겨나는 것이지요.”

즉 직접적인 예를 들겠습니다. 조선시대 소년출세의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세종 때의 좌의정을 가장 오래했다는 맹사성(孟思誠)입니다. 이렇게 정승 반열에 올라 가장 오랜 기간 있을 수 있었던 것은 맹사성의 뛰어난 업무 능력과 인품, 그리고 항상 청렴한 생활을 하였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맹사성이 젊었을 때는 지식만 믿고 하늘 높은 줄 모르는 오만과 독선을 가진 전형적인 소년출세자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맹사성은 19세 어린나이로 장원급제를 하여 20세에 경기도 파주 군수가 되었습니다.”고 하면서 맹사성에 관련된 너무도 재미있고 잘 알려진 이야기를 했다. 아래는 맹사성 대감에 관한 일화(逸話)이다.

맹사성은 어느 날 파주에서 유명하다고 소문난 무명 선사를 찾아갔다. 그러나 무명선사는 맹사성이 자기를 찾아온다는 소식을 듣고는 허리를 굽히지 않으면 머리가 부딪치는 문틀을 만들어 문에 달았다.

맹사성이 무명선사를 찾아가 스님이 생각하기에 이 고을을 다스리는 사람으로서 내가 최고로 삼아야 할 좌우명이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무명 선사가 대답했다. 그건 어렵지 않지요. 나쁜 일을 하지 말고 착한 일을 많이 하시면 됩니다.?

맹사성은 그런 것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이치인데, 먼 길을 온 내게 해줄 말이 고작 그것뿐이오? 화를 냈다. 그리고 맹사성은 거만하게 말하며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다. 그러자 무명선사가 녹차나 한잔하고 가라며 붙잡았다. 맹사성은 못이기는 척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무명선사는 찻물이 넘치도록 맹사성의 찻잔에 차를 따르는 것이었다. 맹사성은 찻물이 넘쳐 방바닥을 적신다고 소리쳤다. 하지만, 스님은 태연하게 계속 찻잔이 넘치도록 차를 따르고 있었다.

 

그러고는 잔뜩 화가 나있는 맹사성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스님이 말했다. 찻물이 넘쳐 방바닥을 적시는 것은 알고, 지식이 넘쳐 인품을 망치는 것은 어찌 모르십니까? 하고 스님이 맹사성에게 말했다.

 

스님의 한 마디에 맹사성은 부끄러움을 느껴 황급히 일어나 방문을 열고 나가려고 했는데 맹사성은 이마가 문틀에 세게 부딪히고 말았다. 그러자 스님이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고개를 숙이면 부딪치는 법이 없습니다.

 

이 때부터 맹사성은 크게 깨닫고 지식만 믿고 자기 자신이 오만과 독선에 빠져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인지 몰라도 맹사성은 조선시대 최고 지위인 정승을 겸손과 청렴함으로 일관했다고 한다.“고 하면서,

 

과유불급(過猶不及)과 고개를 숙이면 부딪치는 법이 없다.

 

이러한 맹사성의 이야기는 맹정승의 이야기로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여기서 맹사성은 무명선사에게서 과유불급(過猶不及)과 고개를 숙이면 부딪치는 법이 없다는 것을 배우게 됩니다.”고 했다. 그러면서 소년 출세의 최고 병폐가 바로 오만과 독선입니다. 오늘날에도 고시 한번으로 평생을 우려먹는 출세 길을 걸었던 사람은 서민의 고통과 어려움은 피상적인 일로 받아들이고 바라 볼 뿐입니다.”고 힘주어 말했다.

 


기사등록 : 김영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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