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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2018 제15회 구미인동 3.1문화제' 성료

이순락기자 0 94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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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구미시 인동 3.12독립만세운동 기념탑 공원에서는 '2018 15회 구미인동 3.1문화제'가 열렸다.

오후 4시 추모제를 시작으로 인동아리랑과 진도아리랑(인동아리랑 보존회), 색소폰공연(금빛소리 색소폰 동호회), 새마을합창단의 합창 등 추모공연이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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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동아리랑 창(唱)으로 기념식을 축하하고 있는 인동아리랑 팀 ~


오후 530분부터 시작된 기념식 행사는 애국가 4절 제창과 함께 순국선열에 대한 묵념으로 경건하게 진행됐으며, 독립만세운동 재현연극공연과 대한독립만세 횃불퍼포먼스 행사와 함께 인동3.12독립만세운동 기념탑 일대 뒷산은 3.1절 노래가 장엄히 메아리 쳤다

 

인사모 3~4대 회장 서주달 바른언론포럼 청음회장 증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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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사모 3~4대 회장 서주달 바른언론포럼 청음회장이 제관으로 참석하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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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미지역 기자단 20여 명이 서주달 청음회장의 3.12인동 만세운동에 관한

취재, 보도를 요청하며 문화제 관련 설명 후 식사를 하고 있다 ~

인동 3.12독립만세운동 역사를 발굴하고 이를 기리기 위한 구미인동 3.12문화제를 추진해 온 서주달 바른언론포럼 청음회 회장은 3.12만세운동 당시 만세바위 주변에서 벌어졌던 상황을 상세히 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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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동 만세바위 현장 기념물이 힘차게 버티고 있다 ~

 
1919312일 인동 진평동 3.12독립만세운동은 일제치하 최대의 항일 민족항쟁으로 전국 각지에서 독립만세시위가 일어났다. 경상도 지역에서는 38일 대구 계성학교 학생의거를 시발로 의성비안과 인동·진평동, 김천, 포항을 거쳐 안동과 경주 등지로 만세운동이 확산됐다

 

당시 경북 중서부 지역에서는 312일과 이틀 뒤인 14일 인동에서 만세운동이, 43일 해평, 48일 임은동, 412일 선산장터 등지에서 연속해 시위가 일어나 도내의 만세운동의 열기를 고조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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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미시 인동 3.12 만세공원 탑 동산 ~ 


인동 3.12독립만세운동의 발단은 인동 진평동 출신의 기독교 신자들인 이내성, 이범성, 이상백 등19108월 일제의 무력침략에 한일합병이 되자 국권회복을 위한 노력의 일환으로 거사가 진행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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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전통방식에 의한 제례로서 만세운동으로 돌아가신 넋들을 위로하고 있다 ~


3.1독립만세운동이 있은 뒤 37일 대구 계성학교에 재학 중이던 이영식이  등사판으로 등사된 독립선언서 20매를 가지고 동지인 이내성 애국지사와 함께 진평동 유지 이상백을 찾았으며, 이범성 등과 함께 거사를 논의했고, 이어서 같은 동리의 이영래, 임점석, 임용섭, 박명언, 권영해 등과 상의해 모두의 동의를 받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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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여한 제관 모두가 합장하며 부복하고 있다 ~ 

312일로 거사 날짜를 결정한 이들은 독립선언서 등사본과 태극기 준비에 만전을 기했다. 거사 당일 박영언 등은 동리의 각 호를 방문해 오후 8시 현재 인동3.12독립운동만세 기념탑이 위치한 진평동 뒷산에서 독립만세를 통해 우리 민족이 일제에 항거해 궐기한다는 사실을 알리며 참여를 독려했다.

 

만세바위에 삼삼오오 300여 명 횃불 밝히며 만세 외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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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관들의 성명이 적혀있어 출석부처럼 확인하고 있는 장면 ~

 

인동 3.12독립만세를 위해 뒷산 만세바위를 중심으로 삼삼오오 모여 들어 그 숫자는 무려 300여명에 이르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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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백과 이영식은 교대로 만세바위 위에 올라 민족자결주의 원칙에 따라 조국이 멀지 않은 장래에 독립이 될 것이라는 사실을 주지시키고 이를 앞당기기 위해 힘차게 만세를 통한 시위운동을 전개해야 된다는 사실을 강력히 호소하며 독립만세를 선창했다.

 

만세바위 일대는 태극기 물결과 만세의 함성으로 가득차 주민들은 가슴이 벅차올랐다. 한일합병 후 10년 만에 다시 보는 태극기는 후안무치와 안하무인으로 일관된 일제를 강력히 규탄했으며 일제치하에서 벗어난다는 해방감을 느끼게 했다.

 

밤이 깊도록 횃불을 밝히며 만세를 외친 인동 3.12 만세시위대를 진압하기 위해 달려온 일제 군경들은 주동 인물 8명을 체포했고 만세시위대는 강제로 해산당했다. 1차 만세 사건으로 항일 저항의식이 고취됐으며 이틀 뒤, 대구 계성학교 학생 김도길은 다시 진평동으로 들어와 청년 유지 박봉술과 김성윤을 만나 의거를 다시 논의했으며 일제 군경의 탄압에도 굴하지 않고 314일 오후 9시경 뒷산 만세바위를 중심으로 독립만세를 힘차게 외치며 항일투쟁을 전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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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김태근 구미시의회 부의장(오른쪽에서 두번째)이 제주로, 서주달 회장(왼쪽에서 세번째) 제관으로 ~


한편, 3.12 만세운동으로 옥고를 치룬 애국지사들에 대한 일제의 탄압을 악랄했다옥고를 치룬 애국지사 유족들의 증언에 따르면 일제는 체포한 애국지사들을 취조실에서 무자비한 고문을 자행했으며 벌거벗은 피부를 날카로운 갈고리로 찢는 것을 비롯해 달군 쇠붙이로 처참하게 지지는 등 인간의 정신과 육체를 피폐화 시키는 잔혹한 만행을 서슴지 않았다.

 

1919425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인동 3.12독립만세운동의 주역들에 대한 형량이 결정됐으며, 이상백은 징역 2, 이내성은 징역 16, 이영래, 임정석, 임용섭, 박봉술은 각각 징역 10월을, 이윤학, 장상권, 장주서, 서기옥, 임상선, 박근술, 서천수, 박순석, 김성윤, 박삼봉, 박금출, 장영직권경보, 장준현 등은 징역 6개월을 언도받아 대구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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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례 후 관계자들이 기념촬영하고 있다 ~

 

인사모(인동을 사랑하는 모임) 추진 3.12인동 독립만세운동 기념제 창설

 

서주달 바른언론포럼 청음회 회장을 위시한 인사모(인동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에서는 2004312일 제1회 구미 인동 3.1문화제를 추진해 인동 3.12독립만세운동을 재현했으며, 이후 이들의 노력으로 인동 3.12독립만세운동 기념탑이 건립되는 등 3.1문화제가 어느덧 15회까지 이르게 돼 구미 출신 독립운동가들의 선양을 비롯해  지역의 자랑으로 자리매김하게 됐다.

[이 게시물은 관리자님에 의해 2019-01-03 09:35:05 태스트용에서 이동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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