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토]안동 양반, 선산 양반 그리고 경주 양반

이순락기자 0 6606

“안동 가서 양반 자랑하지 말고, 문경 가서 돈 자랑하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고 문경 탄광 견학 때 들려준 그곳 관광도우미(해설사)의 얘기였다. 안동 양반에 대한 설명을 하려다 보니 필자가 현재 살고 있는 선산과 고향인 경주에 대한 얘기도 하지 않을 수 없다는 생각이다. 다만 문경에서 돈 자랑하지 말라는 얘기는 과거에 문경에 국립은성탄광이 있었고, 검은 보석으로 불리는 석탄을 생산하는 지역이다 보니 옛날엔 문경에는 그렇게나 돈이 많이 끓었다는 얘기를 한 것이다.

 

안동이 양반도시로 유명하다는 것은 긴 설명이 필요 없을 정도이다. 골짜기마다 씨족(동성) 집성촌으로 이루어져 있고, 국내 굴지의 서원도 우뚝 우뚝 서있기 때문이다. 안동에서도 가장 유명하게 잘 알려진 하회마을의 경우를 보자. 하회마을은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한국적 고유의 전통이 그대로 살아있는 마을이다. 서애 류성룡 대감을 정점으로 하는 풍산 류씨 종택의 전통 마을이 바로 하회마을이 아닌가.

 

또한 퇴계 이황 선생의 도산서원은 안동을 대표하는 서원의 하나이다. 유흥준 박사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에 소개되어 있는 퇴계 이황 선생의 진성 이씨 대종회에서 있었던 사건(?)을 간략하게 소개해 보면 이렇다. 대종친회에서 문중 회의를 했는데 내용인즉 “우리 퇴계 할아버지가 연세로 보나 학문을 보나 율곡 이이 선생 보다 30-40년은 앞선 분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폐공사에서는 감히 우리 할아버지를 천 원짜리 지폐에 넣고, 율곡 선생을 5천 원짜리에 넣게 한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조폐공사에 시정을 요구하며 엄중하게 항의를 하여 조폐공사 당국에서는 한동안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에 대해 고민이 깊었다고 한다.

 

그런 중에 어느 한 간부 직원의 대단한 지혜로 문제를 정말 슬기롭게 대답, 해결했다고 했다. 즉 “퇴계 선생님의 대종회에서 항의하신 것은 너무도 지당하신 말씀입니다. 그러나 저희들은 퇴계선생님이 율곡선생님 보다 여러 면에서 앞선 분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퇴계 선생님을 천원 권에 모심으로서 보다 많은 사람이 쉽게 대할 수 있게 하자는 뜻에서 그렇게 모셨고, 반면에 율곡선생님을 5천 원 권에 모신 것입니다.”고 하여 더 이상 이의 없이 문제를 해결했다는 이야기를 소개한 것이었다. 안동 양반의 자존심은 대단하지 않는가.

 

선산 양반에 관한 이야기이다. 선산(넓게는 구미 전역을 의미한다)은 ‘충신은 불사이군이요’라는 유명한 말을 남긴 고려 말의 충신 야은 길재 선생을 비롯하여 충신열사들이 줄줄이 배출된 인재의 고장이다. 그러기에 이조 영조 때 이중환 선생의 택리지에서 ‘조선인재 반인재 영남인재, 영남인재 반인재 선산인재’라고 기록하고 있을 정도였다. 점필재 김종직은 영남 사림파의 조종으로서 수많은 인재를 양성했던 분으로 유명하다. 즉 영남 사림파라는 학맥을 만들어 성리학을 전수케 함으로써 조선 통치의 근간으로 자리매김하도록 하였고, 그로 인해 선산(구미)을 한국 정신문화의 산실이라고 지칭하기도 하는 것이다. 그만큼 이 곳 사람들은 전통적으로 자존심이 대단히 강한 곳이다. 사육신의 단계 하위지, 생육신의 이맹전은 청사에 길이 남아 추앙받는 선현들이 아니겠는가.

 

필자가 대구에서 이곳에 와서 정착하는 동안 연세 지긋하신 어르신들로부터 참 많은 마음고생을 겪었다. 물론 당시엔 선거운동이라는 특수한 입장에 있었던 필자였던 관계로 어르신네가 계신 방에 들어서면 큰절을 하여 예를 올리는 것은 필수적 기본 사항이었다. 그럼에도 지나친 홀대를 참다못해 ‘당신네가 도대체 얼마나 양반이기에 이런 식이냐?’는 마음에 어느 순간부터 무게(?)를 넣은 대응을 했다. “어르신, 소생에게 너무 어렵게 하시지 마시지요. 저는 고향이 경주입니다. 저희 처가 장인어른이 지금 향교(언양) 전교를 연임(連任) 중에 있습니다. 제 큰 누님 시동생되시는 사형의 경우는 경주 향교 총무입니다. 제 큰 형님은 경주 촌 동네지만 타성은 두 집 밖에 살지 않는 청주 한씨 동성마을에 출입(장가)하셨습니다.”고 했더니 그 이후로는 필자에 대한 태도가 그야말로 180도 바뀐 경험을 했던 것이다(향교 전교는 향교의 최고 책임자로 대학의 총장급 예우를 하고 있다).

 

경주에는 안동의 하회마을처럼 양동 마을이 있고, 역시 유네스코가 지정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전통 민속마을이다. 경주에는 안동보다는 좀 차이가 있겠으나 촌 동네로 들어가면 타성(他姓)이 거의 없는 동성마을 집성촌이 생각 이상으로 많다. 그런 연유인지는 모르지만 서로가 자기네 성씨가 양반 행세하면서 타성을 내려(下)보는 기질이 많은 곳이다.

 

이런 우스운 얘기가 있다. 양동 이씨가 갓 쓰고 두루막 바람으로 물을 건너야 할 형편에 있었는데 마침 그 때 한 사람이 먼저 옷을 걷어 올리고 물을 건너는 중에 있었다. 당연히 양동 이씨가 소리 질러 물을 건너는 사람을 불렀고, 좀 업어달라고 부탁한 것이다. 물에 이미 들어간 사람으로서는 기분이 나빴으나 그를 업고 물을 건너고 있었다. 그런데 강의 중간 쯤 지점에서 양동 이씨 이 양반이 자기를 업고 가는 사람에게 “나는 양동 이씨로되 이만 놓겠네(즉, 자네에게 내가 양반인 이상 존대말을 하지 않겠다는 것)”했던 것이다. 그러니 그를 업고 가든 사람이 아마 속으로 ‘뭐 이런 작자가 있노?’하는 마음이었지 않겠는가. 그 사람 왈 “아, 그럼 나는 배반 손씨로되 나도 놓네.”하면서 업고 가든 양동 이씨를 물에 내동댕이치듯 내려놓아 양동 이씨를 그야말로 물에 빠진 생쥐꼴로 만들었다는 재미난 이야기가 있을 정도이다. 경주 사람들은 그만큼 자존심이 유독 강하고 남에게 뒤지기 싫어하는 기질이 있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는 요즘 젊은 사람들에겐 어느 고래적 고리타분한 얘기로만 들릴 수도 있을 것이지만, 우리의 전통과 그 전통을 존중하고 지켜 낼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아득한 추억 같은 얘기를 나누어 본 것이다.

이순락 기자(e-mail : soorakey@naver.com)



기사등록 : 이순락기자 / gbm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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