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훈박사칼럼]일본의 “정한론(征韓論)”을 말한다.

이순락기자 0 144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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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훈 경북대 평화문제연구소 연구위원, 구미회 부회장  


조선의 마지막 총독 아베 노부유키 “조선 국민이 제 정신을 차려, 찬란하고 위대한 옛 조선의 영광을 찾으려면 100년이 더 걸릴 것”이라고 했다. 또, “우리 일본이 조선인들에게 총과 대포보다 무서운 식민교육을 심어놓았기에 결국 조선인은 서로 이간질하며 노예적 삶을 살 것”


1853년 미국의 동인도함대 사령관 페리(Perry) 제독이 미국 대통령의 일본에 대한 쇄국정책을 포기하고 개항(開港)할 것을 요구하지만 미국 페리제독의 군대에 일본이 대패하여 1854년 미 ·일 화친조약에 이어 1858년에는 미국을 비롯하여 영국·러시아·네덜란드·프랑스와 통상조약을 체결하게 되면서 일본은 서구의 선진문물과 제도를 받아들이면서 일본은 서구 자본주의화 되기 시작하며 빠른 시간에 국력을 배양하며 키운다.


이 배양된 국력은 조선침략으로 이어지는데 1875년 조선의 강화도를 무력으로 침략하는 이른바 “운요호 사건(雲楊號事件)”을 만든다. 따라서 쇄국정치를 일괄하던 조선은 1876년 ‘강화도조약(江華島條約)'을 체결하면서 일본의 강제로 개항을 하게 되면서 일본의 조선침략은 본격화되는 것이었다.


이 강화도 침략은 임나일본부설에서 발전한 정한론(征韓論)에서 비롯되었다. 정한론의 요점은 1870년대에 일본 조슈번의 “요시다 쇼인”이 주장하였다. 한마디로 조선(朝鮮)에 대한 침략론이다. 이 정한론의 밑바탕에는 임나일본부설(任那日本府說)있겠다고 하겠다. 이 설은 일본의 야마토(大和倭)가 4세기 후반에 한반도 남부지역에 진출하여 백제·신라·가야를 지배하였고, 특히 가야에는 일본부(日本府)라는 기관을 두어 6세기 중엽까지 한반도 남부를 직접 지배하였다는 설이며 조선을 침력하는 정한론으로 발전하였다고 볼 수 있다. 임나일본부설은 조선을 침략하여 지배하는 것은 옛날 과거의 영광을 되찾는 것으로 정당한 명분을 제공하였다. 


한반도를 정벌하자는 정한론(征韓論)은 요시다 쇼인(吉田松陰)이 구체화하고 주장하는데 그가 쓴 《유수록(幽囚錄)》에는 “무력 준비를 서둘러 군함과 포대를 갖추고 즉시 홋카이도, 캄차가 반도와 오흐츠크 해, 오키나와를 개척하여 일본 영토를 확장하고, 조선(朝鮮)을 정벌하여 북으로는 만주를 점령하고, 남으로는 타이완과 필리핀까지 빼앗아 옛날 일본의 영광을 되찾아야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그의 사상은 요시다 쇼인의 제자들인  다카스기 신사쿠(高杉晉作), 구사카 겐즈이(久坂玄瑞),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야마가타 아리토모(山県有朋)등은 훗날 메이지유신(明治維新)의 주역들이 되며 그들의 스승 요시다 쇼인이 주장한 정한론(征韓論)과 대동아공영론(大東亞共榮論)으로 발전시켜 나간다. 


요시다 쇼인의 제자들은 메이지 유신으로 경제적으로는 자본주의가 체제를 받아들였고, 정치적으로는 입헌군주제를 만들어 일본의 국력을 성장시키며 급속한 근대화의 길을 가게 된다. 이후 일본은 1894년의 청일전쟁과 1904년의 러일전쟁의 승리로 조선을 침략하여 강제로 식민지화하였고, 아시아에서 일본제국을 형성하려는 침략전쟁을 확대해 나가게 된다.


요시다 쇼인의 정한론을 계승한 이토 히로부미(伊藤博文), 이노우에 가오루(井上馨) , 가쓰라 다로(桂太郞), 미우라 고로(三浦梧楼), 초대 조선총독 데라우치 마사다케(寺內正毅), 2대 조선총독 하세가와 요시미치(長谷川好道), 오시마 요시마사(大島義昌)등은 모두가 일본 야마구치 현 출신들이다. 


그런데 지금의 일본 총리 아베 신조(安倍晋三) 역시 야마구치현 출신이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1894년 조선의 경북궁을 군대를 이끌고 강제로 침략한 오시마 요시마사(大島義昌)가 지금 일본 총리인 아베신조의 고조부이다. 또한 아베 신조의 외조부 기시 노부스케(岸信介) 또한 야마구치현 사람으로 제2차 세계대전이후 A급 전범이었다. 따라서 아베 신조 총리는 당연히 정한론을 신봉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지금의 일본의 수출규제 조치는 아베신조 총리의 “경제적 정한론”이라고 필자는 정의하고 싶다. 


1945년 일본의 무조건 항복으로 한국에서 마지막 총독 아베 노부유키(阿部伸行)는 패전 후 한국을 떠나면서 의미심장한 예언을 했는데 “조선 국민이 제 정신을 차려, 찬란하고 위대한 옛 조선의 영광을 찾으려면 100년이 더 걸릴 것”이라고 했다. 또, “우리 일본이 조선인들에게 총과 대포보다 무서운 식민교육을 심어놓았기에 결국 조선인은 서로 이간질하며 노예적 삶을 살 것”이라고 했다.


아베 노부유키가 한국인에게 이 얼마나 무서운 말을 하고 떠났는가? 일본의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조치를 취하여 국민들이 격분하고 있다. 감정은 불매운동으로 일어나고 우리도 과학과 기술을 발전시켜 소재부품의 대일 의존도를 낮추어야 한다는 목소리와 어느 한쪽에서는 그래도 일본과 빠른 시간 내에 관계개선을 위해 외교적으로 풀어야 한다는 등등의 목소리가 있다. 


일본은 아베신조가 총리가 한국수출규제 조치를 취할 때는 모든 것을 계산하고 시작한 것이다. 일본은 역사를 보면 그렇게 즉흥적으로 관계를 만드는 나라가 아니다. 오랜 시간동안 준비하고 계산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옛 일본 야마구치현의 사무라이들이 정한론을 들고 나왔다면 오늘날의 야마구치현 아베가 “경제적 정한론”을 들고 나왔다. 


“우리 일본이 조선인들에게 총과 대포보다 무서운 식민교육을 심어놓았기에 결국 조선인은 서로 이간질하며 노예적 삶을 살 것”이라는 아베 노부유키의 말을 한국의 정치인들과 국민들은 잊지 않고 기억하며 그가 말한 말이 틀렸음을 우리 한국인들이 증명해 보여야 할 것이다. 일본 국민들에게 가장 존경하는 사람이 누구냐? 물으면 정한론을 주장한 “요시다 쇼인”이 가장 많다고 한다. 이것은 일본 국민들의 마음 한구석에 일본 제국주의 부활의 꿈이 항상 자리매김하고 있다는 것으로 해석이 가능하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이제부터 한국인들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가를 무겁게 고민하며 정신을 제대로 차리지 않으면 안 될 위기적 상황에 놓여있다. 아베 노부유키가 한국을 떠나면서 남긴 의미심장한 말을 모두가 되새기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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