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야사학자 류돈하 칼럼, '외할배 이야기'

이순락기자 0 35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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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필자 류돈하 선생 ~ 



1.
내  외조부께서는 융희20년,대한민국 8년인
1926년 11월 안동 도산에서 태어나셨다.
2차대전이 한창이던 17세 되시던 해에 안동 임하의 
반남박씨 판관공파 문중의 외조모와 혼인하셨다.
 그로부터 2년 후 길을 지나다 영문도 모른 채 트럭에 태워졌다.
그리고 왜국 북해도로 끌러가셔야만 했다.
할배를 끌고 간 관공서 관리 놈이 한다는 말이
돈을 벌게 해준다는 것이었다.
할배는 북해도 탄광에서 배를 굶주리며 뼈빠지게  일하셨다.
너무 배가 고파 옥수수를 처먹고 있던 왜인에게  옥수수를 좀 나눠달라는 도움까지 청해야 할 정도였다.
할배의 회상에 의하면 그 놈은 옥수수를 나눠주지 않았다 한다.
전쟁에 필요한 자원을 충당하기 위해 고향을 등진 채 강제동원되어 죽도록 일하던 조선인들  중 다수는 살아서 고향땅을 밟지도 못했다.
우리 할배는 다행히  그 이듬해에 왜국이 전쟁에서 패망하고 우리나라가 해방을 맞이하고서야 고향땅을 밟을수 있었다.

2.
고향으로 돌아온 할배는 혈기왕성한 약관의 나이임에도 집안의 장자로서 증조부와 함께농사를 지으셨다.
그러던 중 1950년 6월 한국전쟁이 발발하자 국군으로 강제소집되어 전쟁에 참전하셨다.
나에게 증언하시기로는 머리위에  소총을 들고 적을 확인도 않은 채 사격했다고 한다.
그리고 전투 와중 다리에 총을 맞아 돌아가실때까지 다리를 절뚝이셨다.
고향에 다시 돌아와서도 평생 농사를 지으시고 아들딸 육남매를 모두 대학까지 보내셨다.

3.
해방과 분단.동족상잔의 비극으로부터 70여년이 지났다.
식민지시절 조선사람들의  서러운 피눈물...
그리고 그 한의 절규에 일본정부는 늘상 책임지지 않고 애매모호한 태도로 일관 해 왔다.
마치 풍신수길이가 일으킨 침략전쟁  임진왜란을 문록의 역이니 출병이니 하는 따위의 말장난으로 슬며시 책임을 회피한 그 비겁하고 더러운 짓거리와 동일한 맥락이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는 미래가 없으며 반성을 모르는 나라에게는 기대할 것이 없는 법이다.

4.
동족상잔의 비극이 일어난 오늘..
참전용사이신 우리할배가 그리운 오늘이다.
국가를 위한 국민들의 헌신을 헌신짝처럼 저버렸던 자칭 보수정권들은 두고두고 준엄한 역사의 심판을 받아야 마땅하다.
또 그러한 정권들과 그에 몸담았던 자들은 실로  애국운운할 자격이 없다.
제국과 민국의 경계에서 식민지를 겪으며 전쟁의 참상마저 당해야 했던 우리 할배할매 세대들의 헌신 그리고 희생을 되새겨 본다. 





기사등록 : 이순락기자 / gbm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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