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야사학자 도경당 류돈하 칼럼 "한국 정신문화의 수도 일본규탄 시위 결행 후기"

이순락기자 0 3862

[재야 청년 사학자 도경당 류돈하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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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도경당 류돈하 선생 ~


한 달 째 이어지고 있는 일본의 수출규제와 백색국가 제외 등 경제침략은 그칠 줄 모른다.

민국 백주년을 맞은 우리 대한의 국민들은 범국민적으로 분연히 떨치고 일어나 각지에서

항일운동을 펼치며 백년의 정신을 이어가고 있다.


대구와 진주에서는 시민들이 스스로 창의하여 1인시위 결행에 동참하며 일본정부의 패악함을 연일 규탄하고 있으며, 그 열기는 식을 줄 모른다. 정치이념과 계층, 그리고 성별과 연령을 막론하고 표출하는 애국심은 동서고금에 드문 일이다.

 

 

나는 지난 521일 안동 문화의 거리에서 자한당 황교안대표에 대해 구세주 운운 아첨성 발언을 한 안동유림을 규탄하는 시위를 결행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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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인 시위 결행 중에 있는 도경당 류돈하 선생 ~


201988일 나는 다시 안동 문화의 거리에 다시 섰다.

안배진삼 및 일본에 대한 규탄시위를 결행하기 위해서이다

.

이번 안동유림의 일본규탄성명서 발표덕분에 우리 안동의 시위결행은 충분히 명분이 주어졌고

당위성이 더해졌으니 5월 황교안 사태 시위에 비해서 그리 비장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안동 문화의 거리는 우리 항일광복운동사에서 가장 깊은 의의를 차지하고 있다.

바로 기미년만세혁명이 일어났던 곳이기 때문이다.


안동은 1919313일 만진 이상동(晩眞 李相東 1865114~ 19511129)선생의 단독시위로 만세혁명이 시작되었다. 만진 이선생은 석주 이상룡 선생의 친아우이며 유학자임과 동시에 독실한 기독교인이었다. 만진선생은 오늘 내가 서 있었던 성결교회 앞에서 태극기형상의 종이연에 대한독립만세라고 쓴 후에 이것을 하늘로 날린 것으로 역사는 전한다.


그리고 하늘에 연을 날린 직후 선생은 대한독립만세를 외쳤다. 대한독립만세를 연호한 선생은 곧 왜경에게 압송되었다. 선생의 이 단독시위는 안동의 만세혁명이 들불처럼 일어나는 도화선이 되었다.

이 작고 좁은 문화의 거리에서 백 년 전 3천여 명이 한꺼번에 운집하여 만세혁명에 참여한 것을 생각하노라면 가슴이 뜨거워지지 않을 수 없다.


앞으로 이 곳에서 일본규탄 시위 결행이 안동시민들의 힘으로 계속 이어진다고 하니 이는

선조들의 정신을 그대로 따르고 실천하는 것이 된다.

안동은 한국정신문화의 수도이자 선비문화의 본향이며 항일광복운동의 성지이다.

 

 

오늘의 시위결행은 지난번처럼 오전 1010분부터 이루어졌다.

시작 10분도 되지 않아서 좌우의 점포 사장님들께서 함께 사진을 찍거나 시원한 물을 건네주었다.

지난 5월의 시위와 비교하자면 반응은 오히려 더 좋아졌고 많은 분들의 전폭적인 지원이 이어졌으며 시위에 반대하는 시민은 딱 한명이 있었다.


일본을 편드는 듯한 발언으로 '이런 시위를 하니 나라가 망하지.'라며 한숨섞인 독설을 내뱉고 지나가는 아주머니를 앉혀놓고 허심탄회 30분동안 대한민국 초대 국무령 석주 이상룡 선생의 생애와 사상을 논하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였다.


하지만 이번 시위의 결행을 지지하고 동참하며 호응해주는 시민분들이 더 많았다.

캔커피와 음료수를 건네주는 청소년들을 보며 숙쓰럽고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그들이 곧 우리의 희망이라고 생각하니 든든한 마음 역시 생기기도 하였다.


한 때 우리의 역사가 곤궁하여 흉폭한 일본제국주의에게 패하여 그 노예가 되는 비극을 당하였으나 이제는 그때와 확연히 다르다.

다시는 지지 않는다.

그래서 가지 않습니다, 사지 않습니다라는 문구에 이어지지 않습니다라는 문구를 넣은 것이다.

이제는 지지 않는다.

 

 

@오늘의 시위가 성공적으로 마무리될 수 있었던 것은 물심양면으로 도와준 고향선배들이

계셨기에 가능한 것이었습니다.

더위에 지칠까봐 점심은 물론 얼음물과 커피를 건네주시던 누님들과 형님들..

그 은혜를 어찌 잊을 수 있겠습니까.

혹여 조금이라도 폐가 될까 저어되어 그 함자를 거론하지는 못하지만 이 글을 통해 깊이 감사드리고 싶습니다.


시위는 원래 오후 6시까지 진행하기로 하였으나 갑작스러운 빗님으로 인해 5시가 못되어 끝나게 되었습니다.

특히 임재해 교수님께서는 하시던 일을 마다하고 달려오시어 밥과 커피를 사주시며 3 시간 가량 한국 고대사 전반에 걸친 즐겁고 뜻깊은 대화를 나누었습니다

.

교수님과 선배님들께 머리숙여 깊이 감사드립니다.

저는 한낱 더벅머리아이에 지나지 않습니다만 고향을 위해 무엇인가를 할수 있고 기여하는 바가 조금이라도 있도록 진심을 다해 정진하겠습니다.


무더운 땡볕에도 불구하고 진심으로 취재를 해주신 여러 기자님들께도 깊은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그리 멀지 않아도 늘 고향이 그립습니다.


~ 도경당 류돈하 쓰다. ~ 



기사등록 : 이순락기자 / gbm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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