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돈하의 역사 바로알기 그리고 고려사에 관한 소고(小考)
*편집자 주(註) : 본문은 지난 2019년 4월3일 페이스북(facebook)에 게재된 젊은 사학자 안동출신의 류돈하 선생의 글입니다. 독자들에게 들려드리고 싶은 참신하고 전적으로 공감이 가는 주장이라 류선생님의 동의를 얻어 올립니다.
여러분께서도 잘 아시고 계시다시피 우리나라의 사학계는 아직도 소위 골수 친일사학자 이병도의 후학들로 둘러 싸여 있어 진정한 역사바로알기는 결코 쉽지 않은 현실입니다. 류돈하 선생은 보수와 진보의 선을 넘은 공정하고 올바른 역사를 바로 세우고, 무엇보다 우리 민족의 저력을 각인시키는 노력이 그 누구보다 진정성이 있어 우리가 이런 분들을 지지하고 격려, 응원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애써 있지도 않은 것을 억지로 꾸며 위대한 상고사. 고대사로 역사를 왜곡할 필요는 없다. 그렇다고 있었던 사건마저 없다고 해서도 곤란하다. 미화와 축소는 그동안 우리역사의 강 큰 병폐였다.
대개 중국은 그 국왕을 황제라 부르고 일본은 천황이라 부른다. 반면 우리 한국의 역대 임금들은 그저 대왕, 왕이라 부를 뿐이다. 이것은 굴종이라면 굴종이다. 이 같은 굴종과 수치의 사관史觀이 아니라 역사에 적힌 것처럼 중국과 대등하고 일본을 발아래 두고 내려다보는 자주적인 사관이 어찌 유사역사학이란 말인가.
신흥무관학교 교가의 가사에 나오는 바대로 '여러만만 헌원자손 업어기르고 동해섬 중 어린 것들 품에다 품어 젖먹여 기른 이 뉘뇨' 와 같은 패기와 자신감만큼이나 우리역사를 바르게 볼 수 있는 안목을 키워야 한다. 짜집기 책인 환단고기를 지나치게 신봉한 나머지 왜 왕실을 삼한의 정통 왕가로 본다던지, 일부 진보론자들이 찬양해 마지않는 박노자처럼 고구려역사는 한국, 중국 등 어느 나라의 역사도 아니다 라고 보는 것이 과연 옳은 역사적 관점인지를 따져 묻고 싶다.
삼국과 조선의 사이에 끼여 있는 나라인 고려에 대한 시각만 해도 마찬가지이다. 단순히 끼어있는 나라가 아니라 삼국의 맥을 이어 조선의 뿌리가 되며 근세를 잇게하는 매우 중요한 시대가 고려이다. 고려사의 중요한 핵심만 따 담은 편년체 사서 '고려사절요' 만 보더라도 우리역사의 허리에 해당하는 고려는 굴종과 치욕의 길만 걷지는 않았다.
사대모화 사상에 빠져 우리의 전통과 자주성을 스스로 저버리거나 내팽겨치지는 않았다. 몽고의 침략같은 절체절명의 시절에도 끝까지 우리의 전통을 지키고 우리의 국권을 허무하게 포기하지 않으며 우리의 국체를 보존하였다. 물론 고려사를 비롯하여 우리 역사의 전체 흐름을 본다면 자랑스러움과 부끄러움, 영광과 좌절도 함께 가지고 있다.
그러나 한결같이 패배하고 치욕의 역사만 이어온 것은 아니라는 점은 분명하다. 그것은 고려사에서 고려의 대외관계사를 살펴보자면 뚜렷이 나타난다.요나라는 인국(隣國:이웃나라)의 예로 고려를 대하였으나, 전쟁에서 패하여 처지가 처참하였고 송나라는 고려를 빈례(賓禮)즉 손님의 예로 고려를 섬겼다. 또 고려출신 함보가 시조인 금나라는 고려를 부모의 나라로 일컫으며, 고려에 대해 기왓장 하나 던지지 않겠다고 맹세까지 하였다.
이렇듯 고려는 자주의식을 바탕으로 국제적 위상을 가진 나라였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거치며 사대주의 의식에 찌들다가 일본의 36년 식민통치의 고난을 겪은 우리는 다시 고려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올해는 대한민국이란 이름이 생겨난지 백년이다. 조선 제 15대 임금 광해군은 1621년 고려를 모범으로 한다면 능히 국가를 보전할 수 있다라고 하였다. 광해군의 이 발언이 분단이 된 작금의 우리 상황에서도 어찌 주효하지 않겠는가. 외세의 간섭과 개입없이 자력으로 삼한을 일통한 후, 스스로 민족의 운명을 개척하고 열었던 고려에서 우리는 역사를 통해 그 지혜와 안목을 가질 수 있다면 다행이겠다.자주평화통일의 대업을 앞둔 우리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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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등록 : 이순락기자 / gbm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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