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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돈하 역사칼럼, "이밀의 진정표"

이순락기자 0 69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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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재야청년사학자 도경당 류돈하 ~


신은 죄가 많아 운수가 좋지 못해 험하게 자랐습니다. 태어난지 여섯달만에 아비가 세상을 떠나고 네살 되던 해에 외삼촌이 어미를 개가시켰습니다. 할머니 유씨劉氏는 고아가 된 신을 가엾이 여겨 손수 당신 손으로
어루만져 길렀습니다.

 (중략)

만일 신에게 할머니가 없었다면 신의 오늘이 있을 수 없사오며, 할머니 또한 신이 없으면 여생을 마칠 수 없을 것입니다. 할머니와 손자 두사람이 실로 서로 경상위명(更相爲命:서로 생명을 의지하다)하는 바,
비록 구구한 사정이라도 이를 저버리지 못하겠습니다.


중국 삼국시대 촉나라의 승상 제갈공명의 출사표를 읽고 눈물을 흘리지 않으면 충신이 아니라 했던가.
또 촉나라 출신 서진관료 이밀의 진정표를 읽고 눈물을 흘리지 않으면 효자가 아니라 했던가.

이밀은 원래 촉나라 사람으로 제갈무후(제갈공명)가 44세 되던 해에 태어나 장성한 후 촉조정에 출사하여 오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외교능력을 보이기도 했다.

서기 263년 촉이 위나라에게 망하고 265년에는 권신 사마염이 위나라를 찬탈하였다. 진나라를 세운 사마염은 그로부터 2년 후 44세인 이밀을 태자선마로 임명하자 이밀은 조모의 봉양을 이유로 들어 진정표를 올려 거절하였다.

조모가 자신에게 어떤 존재인지를 서술하며, 96세 조모를 모시기 위해 벼슬을 거절하는 이밀의 태도는 진실로 효성스러웠다. 물론 조모의 봉양을 이유로 들어 벼슬을 사양하는 그 이면에는 촉을 멸망시킨 사마씨에 대한 촉 출신 선비들의 감정이 어떠했는지도 추정 해 볼 수 있다.


촉이 위나라 장수 등애의 침략을 받을 당시 오나라로 가서 교섭을 벌인 이가 이밀이기 때문이다.
이밀은 할머니 손에 자라 할머니 은혜에 보답하며 서로 의지가 되고자 하였다.


나 역시 생후 6개월 만에 어머니 영천이씨를 여의고 우리할매 운호띠기 손에 거두어져 미숫가루를 먹으며 자랐다. 운호띠기는 지극정성으로 나를 길렀다. 밥이 먹고싶다 하면 밥을 차려주었고 감주가 먹고싶다 하면 감주를 손수 빚어주었다.

내가 어릴적부터 사이다와 같은 탄산음료를 좋아하자 운호띠기는 수고를 마다않고 잔칫집에 갈때나 풍산 장에 갈 때 자주 사가주고 오셨다.

그러나 나는 이밀과는 달리 할매와 서로 경상위명하지 못했고 내가 봉양해 드리지도 못했다.

불효자는 웁니다라는 노래가 있다던가. 나는 부모에게 받은 은혜가 없기에 불효자가 아니며 울지도 않는다.
그러나 나는 불초한 불효손으로 할매.할배의 은혜를 갚지 못했다. 할매가 세상을 떠나신 후에 사무치는 할매의 음성과 그 모습은 잊혀지지 않는다.

생전에 즐겨 사용하시던 내방가사책.윷놀이에는 할매의 손때 묻은 자취가 머물러 있다.
그 자취를 더듬다 더듬다 불효손은 울고 만다.


~ 도경당 류돈하 쓰다 ~




기사등록 : 이순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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