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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돈하 칼럼, "설날에 대한 회상"

이순락기자 0 78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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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재야청년사학자 류돈하 ~

내 고향 안동 풍천 하회는 격동의 8,90년대만 하더라도 겨울에 눈이 많이 내렸다. 나지막한 언덕에는 류씨어른들의 산소가 있었다. 우리 어린이 친구들은 항렬에 차등을 두지 않고 어울려서 산과 들에서 뛰어놀았다. 여름이면 논 주변에 있는 도랑에서 놀고 겨울이 되어 눈이 내리면 류씨어른들의 산소 봉분에서 썰매를 타고 놀았다. 썰매는 거북선 그림이 그려진 비료포대였으며, 포대 안에 짚을 넣어 잘 미끄러지게끔 하였다. 비료포대 썰매는 격동의 98년 겨울까지 탄 것으로 기억한다. 96~97년도 겨울 무렵, 하회본동으로 걸어 들어가는 어느 누나가 있었다. 비료포대 썰매를 타는 우리를 발견 한 후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 누나는 서울말씨를 쓰며 큰 카메라로 비료포대 썰매를 타는 우리를 촬영하였다. “이거 찍으만 신문에 나오니껴?” 호기심 많은 똘망똘망한 눈빛으로 귀찮게 물었던 것 같다. 설날에 즈음하면 우리 할배, 할매는 매우 분주하셨다. 안방, 사랑방, 뒷방을 깨끗이 청소하시고 가마솥에는 항상 불을 지펴 무언가를 계속 끓여냈다. 그리고 풍산 장이나 신시장에서 장을 보고 와서 갖은 음식들을 준비하셨다. 할배는 맵디매운 빨간 안동식혜를 사기그릇에 담아 맛있게 드시고 꼬꼬마인 나는 달디단 감주 한사발을 들이킨다. 갈증해소는 물론 소화가 잘 되는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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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따뜻한 방안에 앉아 살얼음 동동 띄워진 식혜와 감주는 그 맛이 가히 정1품 대광보국 숭록대부라 할만 하였다. 또 우리 할매 운호띠기는 항시 설날이 되면 풍산 장에서 쌀강정을 한보따리 사오신다. 꿀이 어느정도 잘 배합된 강정을 우리할매는 늘 오꼬시라 부르셨다. 어린 나는 예천 지보 큰집과 고향집 언덕너머 있는 작은집에 들려 차례를 지내고 세배를 드리고 돌아온다. 고향집에 돌아와 어린 사촌들을 접견하고 삼촌들에게 세배드려 세뱃돈을 받아 중리나 풍산에 있는 오락실로 출타할 생각을 하기도 한다. 집에서의 세배를 마치고 온동네를 돌며 세배를 다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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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자 가거나 죽마고우들과 함께 갈때도 있었다. 대부분 류씨 가정이지만 류씨가 아닌 집도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가리지 않고 평등하게 세배순회를 하였다. 가끔 돈을 쥐어주시는 어른들도 있지만 무엇보다 많은 음식들을 지금의 뷔페처럼 맛보는 그런 재미도 있었다. 물론 음식은 대동소이하다. 그러나 어린 이들이 왔다고 진귀한 과자를 내어주는 집도 있다. 많은 음식들을 씹고 뜯고 맛보고 즐기는 우리들의 배는 과연 정월 대보름달과 같았다. 세월은 마치 ktx와 같아 어느덧 2,30년도 훌쩍 지나고 있으나, 어찌 그 옛 설날 풍경을 잊을 수 있겠는가. 순박한 인심에 오고가는 인정이 넘치던 그 때가 그립다. 다만 고향집은 빈터만 남아 있다. 할배 할매가 심은 밤나무와 대나무 그리고 배나무는 여전하다.
 


기사등록 : 김영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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