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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돈하 칼럼]성묘 가는 길

이순락기자 0 5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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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도경당 류돈하 ~ 


민국 101년 음력 8월 13일 오랜만에 고향을 방문하였다.
선비(先妣)의 묘소를 벌초하고 성묘하기 위함에서였다.
그 옛날 어린 시절, 하루에 3대도 들어올까말까했던 시내버스는 이제 빈번히 마을에 드나들었다.
송현동 안동시외버스터미널에서 46번 버스에 몸을 실어 풍산을 지나 고향으로 들어왔다.
류공방에 들려 주인장 아재와 더불어 환담을 나누다가 낫을 빌려 산으로 올라갔다.
아침에 비가 내려 산길이 촉촉하여 바지밑단과 운동화가 물이 스며들었으나 개의치 않았다.
오랜만에 선산에 들린 차에 비록 온몸은 땀에 젖엇지만 천천히 발걸음을 옮기며 새로 조성된 일가들의 산소 묘비도 천천히 둘러보았다.

어메의 묘소에 벌초를 마친 후 소주한병 부어올리고 성묘를 드리며 재빠르게 하산하였다.
하산을 하다가 우리할매 운호띠기 집터에 발길을 멈추어 세웠다.
12대 종선조 송와 류원정 선조의 묘소의 바로 밑에 우리집이 있었다.
잠깐 예를 표하고 집터를 둘러보았다.
이제 빈 집터는 각종 이름모를 초목으로 뒤덮여 길이 막혀 있었다.
그 와중에 밭으로 사용했던 곳을 살펴보다 할배, 할매가 심으신 밤나무, 대추나무의 열매가 성대히 열려 있는 것을 보았다.
갑자기 가슴이 뭉클하고 아련해졌다.
집은 없어져도 우리 할매.할배의 흔적은 아직 서려 있었다.

집터를 떠나 죽마고우 류공방 주인장과 하회본동으로 들어갔다.
류공방 주인장 류호철 아재는 하회별신굿 탈놀이 보존회원으로 탈 공방을 운영하면서도 하회탈별신굿 탈놀이의 맥을 잇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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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회별신굿 탈놀이 보존회 상설공연장에 들려 보존회 전수조교이신 손상락 선생님과 최영호 선생님께 인사를 드렸다.
손상락 선생께선 국립 안동대학교 민속학과 첫 졸업생으로 국립 안동민속박물관 학예연구실장을 지내시고 현재는 하회별신굿 탈놀이 보존회 전수조교로 계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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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선생님은 저서 '세계유산 한국의 역사마을 하회' 한권을 선물로 주셨다.
표지에는 가이드북이라고 쓰여져 있었다.
책을 살펴보니 하회마을의 인물, 건축물, 자연경관, 전통문화, 민속학적인 관점, 하회별신굿 탈놀이에 관해 꼼꼼하고도 상세히 기술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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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선생님께서는 선뜻 나에게 책을 주셨으나 나는 달리 보답할 길이 없으니 그저 열심히 공부하여 보답하는 수 밖에 없겠다.
요즘들어 나에게 책 선물을 주시는 분들이 많다.
열심히 공부하고 또 공부하여 한다.
그것이 은혜에 보답하는 것이라 생각된다.


오랜만에 벌초, 성묘의 목적으로 고향을 방문하여 여러모로 또 기운을 받아 대구 집으로 돌아왔다.
뵙고 싶은 분들이 왔으나 명절 대목이라 폐를 끼치는 것 같아 서둘러 돌아왔다.
한국정신문화의 수도 안동을 안동답게 만들며 지키고 있는 수많은 분들을 보면서 괜시리 든든한 마음이 들었다.
안동을 오가면서 못내 아쉬웠던 것은 예전처럼 혼자 발걸음을 옮겨 안동 임청각을 방문하지 못한 점이다.
현재 임청각은 옛모습으로 복원 중에 있다.
우리 국부 석주선생과 그 아들 동구 이준형 선생의 자취가 서린 임청각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 된 살림집이다.
석주 선샌께서 구국광복의 대업을 실현하고자 서간도로 망명할때 안동을 떠나시면서 마지막으로 묵은 곳이 바로 하회마을이라는 것에서 서로 그 정신이 이어져 있음을 또다시 깨닫는다.
고향 안동이 진실로 좋다.



기사등록 : 이순락기자 / gbm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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