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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돈하 칼럼, 대구 달서을 허소 국회의원 후보의 선조들 이야기

이순락기자 0 9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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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재야청년사학자 언암 류돈하 ~


(1)
대한민국 3대 독립운동명문가 중 하나인 임은허씨는 3대 14인의 독립운동가를 배출하였습니다.
3대 14인은 *지주중류(砥柱中流)의 삶으로 나라에 헌신했습니다.

온 집안이 구국광복운동에 나선 것입니다.
이들의 헌신이 있었기에 오늘날의 대한민국이 있는 것입니다.

방산 허훈, 성산 허겸,왕산 허위 삼형제 중 큰형인 방산 허훈입니다.

이 삼형제로 대표되는 가문은 석주 이상룡 가문, 우당 이회영 가문과 더불어
독립운동3대 명문가에 속합니다.

방산 허훈은 도산서원과 병산서원 원장을 지낼 정도로 당시 유림에서 존경받던 선비였습니다.
동학혁명, 갑오왜란,갑오경장, 청일전쟁, 을미사변, 등의 격동기에 나라가 위기에 처해지자 방산은 두 아우들과 함께 창의하여 을미의병전쟁에 참전했습니다.

을미전쟁 이후 왕산은 벼슬길에 출사하여 황구단 참봉을 시작으로 평리원 수반판사, 비서원승, 의정부 참찬 등의 높은 관직에 임명되어 나라의 재상이 되었습니다.

일본의 지배야욕이 하나씩 실현되자 왕산은 이를 격렬히 성토하다가 고향으로 돌아왔고
일본의 감시가 시작되었습니다.
큰형 방산은 두 아우에게 토지 3천여 마지기를 군자금으로 내놓았습니다.


(2)
얼마후 을사늑약, 통감부 설치, 헤이그밀사, 고종퇴위, 군대해산이 일어나자 왕산은
전국의병들이 연합한 13도 창의군을 결성해 일본에게 함락된 서울을 되찾기 위해 서울진공작전을 펼쳤습니다.

그러나 일본의 강력한 군사력에 실패하여 왕산은 경기도 포천에서 체포되고 1908년 서대문형무소에서 순국하게 됩니다.
왕산의 시신은 그 제자 박상진이 겨우 수습하여 장례를 치룰 수 있었습니다.

왕산의 순국 후 큰집인 방산 허훈의 집은 일본의 사찰과 박해를 견디지 못해
청송 진보로 이주하게 됩니다.

경술국치가 이루어지자 일본의 사찰과 탄압은 더욱 거세어져 갔습니다.
핍박받던 성산과 왕산의 유가족들은 마침내 만주 서간도로 망명하였습니다.

망명하고서도 독립운동을 계속 이어나갔습니다.
이 망명행렬에는 삼형제의 사촌인 범산 허형의 가족도 동행하였습니다.
그들은 구미 남쪽의 김천시 남면 부상역에서 기차를 타고 망명길에 올랐습니다.


(3)
허형의 딸 허길은 민족시인 육사 이원록의 어머니입니다.
육사 이원록은 진성이씨로 친가와 외가 모두 광복운동에 참여하였고 그의 항일정신은 외가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범산의 손녀이자 허길의 조카딸 허은 선생은 석주 이상룡의 손녀며느리로 안동 임청각의 종부이기도 합니다.
서간도로 망명한 이들 가족은 논을 개간하여 쌀농사를 지었고 한민족의 작은 나라를 만든 것과 다름없는 자치단체를 형성해 갔습니다.

허은 선생은 십대의 어린 나이부터 시조부모와 시부모를 봉양하며 집안의 살림을 도맡으며 농사를 지었습니다.

여자의 몸으로 3,400두의 농삿일을 하는 한편 경영도 하였는데 이 경험들은 훗날 석주선생의
서거 후, 안동 임청각으로 돌아와 종부의 역할에 소중한 자산이 되었습니다.

삼형제 중 유일하게 살아남은 허겸은 부민단(扶民團)을 조직하여 석주 이상룡 등 안동의 독립운동가들과 함께 독립운동을 전개하였습니다.

부민단은 두가지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의 백성을 부양한다는 뜻도 있으며 우리 선조 국가인 부여의 뒤를 계승한다는 뜻도
포함합니다.

망명한 왕산의 아들들은 서로 흩어져 만주, 노령등지에서 살아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왕산의 친손주들은 사촌지간인데도 서로 얼굴도 알지 못한채 백년을 지내오다가 백년만에 만남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한편 방산의 아들 허숙과 허종은 국내에 남아 대구에서 활동하였습니다.
특히 허종은 서로군정서의 독립 군자금 모집을 하던 중 붙잡혀 2년의 옥고를 치루어야 했습니다.

허종의 아들이 대구시장을 역임한 허흡이며 허흡의 손자가 바로 '허소'입니다.

독립운동의 내력을 가진 조상의 꿈을 안고 노무현대통령의 사람사는 세상을 실현하기 위해 대구 달서을에 출마하였습니다.

불균의 시대를 청산하고 평등하고 공정한 나라와 사회를 만들고자 하는 그의 이상과 노력은 국민들과 함께 할 것입니다.


언암 류돈하 쓰다
 



기사등록 : 이순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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