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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돈하 칼럼, "드라마 ‘조선구마사’ 폐지"

이순락기자 0 6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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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재야청년사학자 언암 류돈하 ~ 


(1) 생각건대 언제부터인가 유튜브에 들어가 동영상을 시청하려 하면 꼭 이상한 게임광고를 접하게 되었다.

조선왕실 복식이 묘하게 이질감을 주는 터에 실상을 들여다보니 경영게임을 빙자하여 청나라를 배경으로 하였거니와, 중국회사가 만든 중국 게임이었다. 조선조의 복식은 그저 한국 소비자들을 겨냥한 하나의 스킨일 따름이다. 게임내용은 왕이 되고 황제가 되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데 게임성은커녕 조잡하기 그지 없다.

유튜브 전체를 도배하다시피한 중국게임들이 주는 불편함은 이루 다 말할 수 없을 지경이다.

(2)한국의 정통사극은 KBS 1TV의 ‘징비록’을 끝으로 명맥이 끊기다시피 했다.

즉 씨가 말랐다.

그 후로는 약간의 창작을 가미한 육룡을 나르샤, 녹두꽃만이 그나마 역사적 사실을 일부 반영해 줄 뿐이었다.

정작 정통사극이 방영되면 기본 시청률이 그리 낮지는 않다.

이미 그것은 정도전, 징비록에서 증명이 되었다.

그러한 까닭에 의외로 정통사극을 갈구하는 이들이 많다.

최근에 방영된 퓨전사극 철인왕후는 본디 [태자비승직]라는 중국 원작을 리메이크 한 드라마로 원작의 작가는 혐한사상을 가진 작가라 한다. 철인왕후는 실존인물이다.

조선 제 25대 국왕 철종의 왕후로 후안동김씨로 세도정치의 극성기에 마지막을 장식하는 인물이다.

철인왕후의 주요줄거리는 현대 한국의 남자셰프의 혼이 조선 후기 철인왕후의 몸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골자로 한다.

극중의 철인왕후는 남자영혼이 들어간 후부터 유머스레하고 꽤 엉뚱한 캐릭터로 이 캐릭터에서 풍겨나오는 매력에 많은 시청자들이 열광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문제는 작가 박계옥씨의 대본이 조선을 무시하여 가볍게 여기는 듯한 취급에서 폭발한다.

실제로는 엄격하고 꽤 공정한 편찬과정을 가진 조선왕조실록을 한낱 찌라시로 묘사한다던지

세계 문화유산인 종묘제례악을 모욕하는 듯한 묘사는 한국인으로서 매우 불편한 장면이다.

이번에 방송사상 초유의 폐지를 맞이한 퓨전사극 조선구마사는 분노를 자아내게 할 정도로 심각한 역사왜곡을 내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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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구마사는 조선초기 태종, 세종의 시대를 배경으로 악령이 출몰한다는 가상의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러나 태종광효대왕 이방원을 백성들을 학살하는 잔인하고도 정신나간 군주로 묘사한 점과 세종대왕을 한낱 심부름꾼으로 묘사한 장면, 목조 이안사에 대한 언급 등등 하나 같이 국민정서로는 도저히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이 많다.

게다가 중국풍의 여러 소품들은 눈살을 찌푸리게 하기까지 한다.

다행히 시청자들의 청와대 청원으로 초유의 폐지를 이끌어낸 것은 민의가 잘 반영된 것이다.

(3) 방탄소년단, 블랙핑크 등 한국의 아이돌이 전세계를 무대로 널리 한류를 전파한 최근의 상황은 한국의 대중문화가 세계인들을 사로잡을 수 있다는 보편성을 충분히 제공해주었다.

이 보편성은 비단 현대에만 국한된 것은 아니다.

한국의 한류는 알고보면 그 뿌리가 매우 오래되었다.

이러한 한류열풍 때문인지 최근들어 중국은 한복과 김치, 한글 등이 원래 자기것이었다며 신(新) 동북공정 전선을 형성하고 있다.

20여년전 중국은 고구려 발해가 지방정권이며, 중국사의 일부라는 주장하며 동북공정을 진행하였다. 이제는 역사를 넘어 한국의 전통문화를 자기것이라 주장한다. 이는 한중관계에 있어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4) 서기 618년 수양제의 이종사촌 당국공 이천(李泉: 동국 고구려의 정승 연개소문[淵蓋蘇文]의 성씨와 이름자가 같아 이를 피한다.)은 반란을 일으켜 당나라를 세웠다.

당나라는 907년까지 300여년동안 구가하면서 초기인 668년에 서세적으로 하여금 고구려를 멸망케 한다.

고구려 멸망 후 당나라에서는 아주 기이한 현상이 일어난다.

고구려가 비록 사라졌지만 고구려 음악이 널리 유행되었던 것이다.

[구당서] 권90 열전 40 양재사 전에 의하면 양재사가 어사대부 재직시 사례시라는 관청에서 주관하는 잔치에 참가한 적이 있었다.

사례소경 동휴는 장난으로 양재사를 일컫어 고구려사람을 닮았다고 하였다.

그러자 양재사는 신이 나서 전지(剪紙)를 청하여 머리수건에 이를 달고 자주색 도포를 뒤집어 입은 후에 고구려춤을 추었다.

그 손동작이며 움직이는 동선이 딱 들어 맞았다고 하니 양재사는 제법 고구려춤을 잘 춘 것 같다.

이처럼 고구려악은 당나라 고위 귀족들 사이에서도 많은 인기를 얻었다. 한류가 어찌 오늘날에만 통용되겠는가.

중국 당에만 그친 것이 아니라 거란의 요, 여진의 금, 일본에까지 고대.중세에 걸쳐 한류는 그 영향력을 멈추지 않았다.

 



기사등록 : 김영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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