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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돈하 역사칼럼, '군산탐방'

이순락기자 0 54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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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재야청년사학자 언암 류돈하 ~


지난 주말 새벗도서관 길위의 인문학 전북군산 탐방을 다녀왔다..

군산으로 향하는 도중 진안휴게소에서 마이산을 처음 보았다.

신비함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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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안휴게소에서 바라본 마이산의 신비한 모습 ~


군산으로 들어가는 길은 산이 적고 평야로 펼쳐져 있었다.

호남은 예로부터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곡창지대였거니와 임진왜란의 전란때에도 나라살림에 결정적인 기여를 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백년전 왜인들이 이 곳을 점령하면서 피땀흘려 농사를 지은 농민들의 곡식을 수탈하였다.

군산은 아픔과 슬픔이 베어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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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9년 근대화 시기에 개항되어 경술국치 후

해방이 되는 순간까지 일본제국주의의 수탈기지가 된 군산의 역사는 우리를 돌아보게 한다.

1944년 종이를 나르기 위해 놓여진 철길에 조성된 경암동철길마을은 민중들의 삶과 애환이 그대로 녹아있는 곳이었지만 현재는 추억을 사고파는 점빵들로 채워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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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뜬다리부두를 중심으로 대한제국기에 건립된 군산세관 본관.조선은행 등 수탈과 직결된 근대유적은 무겁게 다가왔다.

쌀을 비롯한 각종 곡식들과 조선땅에서 나는 자원들을 싣고 바다를 건너 일본땅으로 향했을 그 수많은 선박들이 아직도 야속하게만 느껴진다.

군산에는 왜인들이 남기고 간 적산가옥들이 많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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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구룡포의 적산가옥처럼 일본정통의상을 입는 야단스러움이 없어 다행이었지만 씁쓸함과 탄식은 도무지 감출 수가 없었다.

가옥을 지어놓고 보물창고를 설치하여 그 일대를 지배했던 왜인들과 그것을 답습한 친일파의 잔영들이 눈앞에 아른거리는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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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산탐방 끝무렵에 지금은 조계조 소유가 된 일본식 사찰 동국사를 둘러보았다.

일제강점기 직전인 1909년 조동종 승려 내전불관이란 자의 금강선사에서 비롯된 이 사찰은 1913년 이 자리에 건립되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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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켠에는 군산 평화의 소녀상 그리고 일본 조동종 인사들의 참사문(참회와 사죄의 글)이 비석에 새겨져 있었다.

그리움 가득한 눈망울을 가진 소녀상을 바라보았다.

그 눈망울엔 실로 많은 것이 담겨져 있다.

식민지 노예로 전락했었던 우리역사의 아픔과 슬픔이

소녀의 눈망울에 투영된 것이다.

 

이번의 탐방은 매우 의미있는 탐방이었다.

 

~언암 류돈하 쓰다 ~



기사등록 : 김영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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