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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돈하 역사칼럼, "어떤 애국심"

이순락기자 0 1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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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재야 청년 사학자 도경당 류돈하 ~


생각건대 경술국치 후 일본에 적극 협력하며 살아간 사람들은 몇 가지 특징이 있다. 해방 후의 그들 태도 역시 특기 할 만하다. 그들은 해방이 되고서는 친일에서 반공 세력으로 탈바꿈하였다. 미 군정에 의하여 일본 강제침략기 동안 누려온 특권을 그대로 인정받으며 보수를 자처하였다. 그리하여 마르고 닳도록 '타도 북한공산당좌파빨갱이'를 주장하였다. 그들의 변신이다.

 

1961년 이후에는 나라가 군부 독재 세력에게 넘어가자 그들은 또 변신하게 된다. 전혀 자유롭지 않은 군부 독재 세력에 편승한 그들은 자유 운운하며 설익은 파시즘과 전체주의로 타인들을 억압하였다.

 

그들의 역사관은 또 어떠한가? 자칭(참칭) 보수 우파가 되어 대한민국의 건국을 1919년이 아닌 1948년으로 역사를 설정하였다. 그리고 태극기를 들고 애국가를 부르며 '애국자 코스프레'를 한다.

 

감사원장을 지냈다는 최모씨는 애국심이 넘치고 흘러 가족 모임에서 조차 애국가 4절을 부른다고 한다. 뜨거운 애국심이다. 그는 자신의 조부가 독립운동 유공자라 주장하였다. 그러나 그의 조부는 '미담'을 가진 독립 유공자가 아니라 일본에게 적극 협력하며 국방 헌금을 내었다는 사실이 있다. (매일신보 1945.3.29.)

 

대개 친일을 한 이들도 '사람'인지라 해방 이후 자신들의 행적과 태도가 몹시 부끄러웠을 것이다. 그러한 까닭에 손아귀에 태극기를 꽉 쥐며 '애국자 코스프레'를 행하였다. 그 자손들 역시 자신들의 조상이 독립 운동을 했다고 주장한다. 이는 명백한 역사 왜곡이자 족보 위조이다.

 

나는 애국심이 부족해서 인지 안익태 작곡 애국가 대신 신흥무관학교 교가를 즐겨 부른다. 애국심이 부족한 나의 논지는 최모씨가 애국자 코스프레를 한다는 것이 절대 아니다. 자칭 보수 우파 중에 그런 사람이 있다는 것이다.


도경당 류돈하 쓰다

 



기사등록 : 김영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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