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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돈하 역사칼럼, '소수서원 답사 후기'

이순락기자 0 68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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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재야청년사학자 도경당 류돈하 ~


느릿느릿한 걸음은 이를데없이 여유로웠다. 굳이 시외버스를 타고 영주 소수서원으로 가는 것이 빠르건만 기어이 기차를 선택했다. 영주역 앞에서 해장국을 먹고 영주여객으로 향하였다. 영주여객 차고지에서 드디어 27 번 버스를 타고 소수서원에 당도하였다. 매표소에 이르러 보니 영주처럼 이름끝에 주()자가 들어가는 지역 시민들은 입장료를 할인해준다고 한다. 내 앞의 손님은 공교롭게도 원주시민이라 하였다. 그리하여 나는 안동의 옛이름 복주(福州)시민이라 우기려 하였으나 그저 좋게좋게 정해진 입장료를 지불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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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원으로 향하는 숲길이 제법 운치가 있었다. 신선이 앉아서 쉴듯한 큰 바위와 더불어 한데 어우러진 소나무는 가히 선계의 풍광이었다. 염계 주돈이를 존경한다는 뜻을 가진 경렴정을 지나 소수서원으로 들어서니 백운동(白雲洞)이란 현판이 걸린 강학당이 눈앞에 우뚜커니 들어왔다. 여기가 바로 1543년 세워진 조선최초의 서원 소수서원인 것이 실감났다. 소수서원의 이름은 원래 백운동 서원이었다. 풍기군수 주세붕의 주도로 건립되어 조정으로부터 최초의 사액을 받고 그 이름까지 정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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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서원의 소수는 당시 대제학이었던 낙봉 신광한이 지은 것이다. 낙봉신선생의 조부는 바로 희현당 혹은 보한재의 당호를 가진 신숙주이다. 신숙주의 일곱째 아들 신형이 낙봉의 아버지이다. 여담으로 단재 신채호 선생은 신숙주의 네번째 아들 신정의 18대손이다. 낙봉은 기폐지학 소이수지(旣廢之學 紹而修之)라고 하여 소와 수를 취해 서원의 이름으로 정한 것이다. 즉 폐해진 나라의 학문을 계승하여 닦는다는 의미로 '이어서 닦는다'라는 의미이다. 여담으로 소이수지와 걸그룹 여가수 배수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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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학당을 뒤로 하니 영정을 모신 영정각이 눈앞에 출현하였다. 북송오자의 성리학을 체계화한 주자학의 시조 회암 주희(주자), 그 옆에는 우리나라 최초로 주자학을 원나라에서 도입해온 문성공 안향의 영정이 중앙에 모셔져 있었다. 문성안공은 주자학을 최초도입하여 소수서원에 배향되었다. 그런데 간단히 정리하자면 문성공 안향은 북송 성리학이 아니라 주자의 학문을 이 땅에 들여온 분이다. 북송성리학은 이미 고려 전기에 고려와 송나라 양국의 교류로 들어온 흔적이 있다. 주자학(주자 성리학)을 도입해 온 문성안공은 1304년에 졸하였다. 그의 사후 12년간 주자학의 도입 공로가 아닌 섬학전 설치를 건의한 공로로 문묘 종사에 논란이 있었다. 그러다 충숙왕 6(1316)때 문성공 안향이 비로소 문묘에 모셔지게 되었다. 선구자의 길은 예나 지금이나 험난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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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향은 주자의 열렬한 팬이어서 그 당호도 주자의 호 회암을 본받아 회헌(晦軒)이라 하였다. 주자와 안향 영정 왼편에는 오리 이원익과 미수 허목 두 대감의 영정이 모셔져 있었다. 그 오른편에는 소수서원의 건립자이자 추가배향된 신재 주세붕, 한음 이덕형의 영정이 모셔져 있는데 오리, 미수, 한음 모두 남인계 정승들이다. 소수서원 설립 이후 퇴계 이황 선생이 신재 주세붕의 후임으로 풍기군수가 되어 서원의 일을 맡은 이래 그 많은 제자들이 소수서원에서 공부했다고 한다. 그 중에 학봉 김성일 선생도 있었다. 이로 미루어 보건대 소수서원은 퇴계학파 인물들이 많이 관련된 중심교육기관으로 짐작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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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서원에는 탁청지(濁淸池)란 연못이 있다. 임진왜란 무렵 풍기군수로 부임한 겸암 류운룡이 바로 연못을 파서 대를 쌓았다. 이 연못이 바로 탁청지이다. 그 후 광해군 때 풍기군수가 된 창석 이준이 홍수로 인해 없어진 탁청지를 다시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탁청지 안내판에 겸암 류운룡의 이름이 없다. 한편 창석 이선생은 우복 정경세와 더불어 겸암의 친아우 서애 류성룡의 대표적 제자이다. 주세붕,이황, 한석봉, 류운룡, 이준 등 역대 풍기군수들이 꽤 이름높은 분들이란 생각이 들었다.

 

서원 내에 부설된 박물관, 선비촌을 둘러보고 소수서원 숲길 바위에 초등학생, 중학생들이 두런두런 모여앉아 열심히 선생님의 설명을 경청하고 있었다. 야외수업을 나온 것 같았다. 귓가에 들리기로는 선생님이 소수서원의 구조에 대해 설명하고 있었다. 다정한 서울말이었다. "여러분 이해되죠?" 나도 모르게 대답했다. "." 

내 발걸음은 매우 빨라졌다. 쪽팔렸다.

 

가을의 정취가 더 해져가는 요즘 먼 지역으로 단풍놀이를 떠나는 이들이 많다. 그러나 비교적 가까운 우리 지역에서도 충분히 가을을 느끼고 나눌 수 있는 장소들이 많다. 우리나라 최초의 서원 소수서원도 그 중에 하나이다. 여유를 찾고 싶을 때 소수서원에서 한번 가을의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떨까?


~ 도경당 류돈하 쓰다 ~



기사등록 : 김영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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