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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돈하 역사 칼럼, "버이 삐떼르 신부의 기록"

이순락기자 0 167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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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재야청년사학자 도경당 류돈하 ~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숙 영부인이 헝가리를 국빈방문하였다. 대통령 부처의 국빈방문은 우리나라의 국격을 한층 더 빛내고 있는 것 같다. 113일 영부인은 헝가리 국가기록원에 들려 1730년 유럽에서 제작된 고지도를 선물받았다고 한다. 현재의 동해가 소동해(小東海, MARE ORIENTALE MINVS)’로 표기된 올바르고 귀중한 고지도라 한다. 현재의 동해를 일본의 영해가 아닌 우리의 영해로 인정하는 이러한 지도에서 세계가 바라보는 객관적인 시선을 다시한번 확인 할 수 있다.

아울러 1902년에 고종황제를 직접 만났다는 헝가리인 신부 버이 삐떼르 신부의 일기(1902~ )와 그 저서(1918)도 공개되었다. 버이 삐떼르는 1902년부터 1907년까지 조선에 머무르며 선교활동을 한 인물이라 한다. 그런데 탁현민 의전비서관 글에서는 '1902년의 바이뻬떼르 백작의 일기'를 소개하였다. 탁현민 비서관의 글을 인용하자면 다음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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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군인들이 학살당하고 시가전이 있던 7월의 그 밤을 잊을 수 없으리라. 이 순간들은 그 현장을 목격한 사람들에게 영원히 기억되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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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량한 일본의 애국자임은 틀림없을지 모르겠으나 통감(역주-이토 히로부미)은 잔학하고 냉혹한 인물이었다. 그는 결국 그가 한국인들에게 행한 범죄로 말미암아 죽음에 이르게 되었다.’

우선 한국의 군인들이 학살당하고 시가전이 있던 7월의 그 밤이라 하면 1902년의 상황이 아니라 190781일의 시가전이 아닐까 추정된다. 1907년의 시가전이 아니라면 1894723일 일본군 1천여명의 경복궁점령사건(갑오왜란)일 가능성도 있다. 한편 190781일에 전개된 시가전은 대한제국군의 군대해산과 함께 육군참령 박승환이 자결하고 해산을 거부한 시위대 1연대 1대대, 2대대로부터 촉발되었다. 이 시가전이 대대적으로 일어난 정미의병의 시초가 된다.

이어서 이어지는 통감부 초대 통감 이등박문에 대한 기록은 그가 죽던 19091026일의 상황까지 나타내고 있다. 탁현민의 글이 좀 혼동을 주는 감이 없잖아 있는데 아마도 그 저서의 내용도 포함된 것이 아닌가 싶다.

어찌됐든 탁현민 비서관이 전하는 버이 삐떼르신부의 조선에 대한 글은 매우 인상적이면서 동시에 예언적이라 할수 있다. 버이 삐떼르신부가 논한 바대로 일본의 식민지배는 영원하지 않았고 결코 짧지도 않은 세월이었지만 그 세월은 일시적이었다. 일본은 미국의 묵인하에 1905년 러일전쟁 직후 대한제국을 전리품으로 챙기면서 식민지로 만들었다. 가쓰라-테프트 조약이 우리의 운명을 결정지은 것이다.

어떤 이는 안중근이 하얼빈역에서 이등박문을 죽였기에 경술국치가 빨리 이루어진 것이라 하였으나 이는 명백히 사실과 다르다. 더 구체적으로 논하자면 일본이 대한제국을 병합하는 것을 확실히 굳히게 된 것은 1907년에 있었던 헤이그밀사 사건 이후이다. 이 사건 이후 고종황제가 강제로 퇴위당하고 정미7조약이 이루어졌거니와 대한제국 군대가 해산되었다. 더 나아가 19108월 일본이 무더운 날씨를 핑계로 강제합병을 미루고 있었는데 이완용이 비서 이인직을 보내 합병을 마무리 지은 사실도 있다.따라서 안중근 의사 때문에 조선이 빨리 일본에게 먹혔다는 것은 매우 어불성설이다. 그와 상관없이 예정된 대로 강제병합한 것이 주지의 사실이다. 덧붙이자면 유럽인조차 이등박문을 냉정하고 잔혹하다 평하였는데 박문이 온건하여 조선을 문화정치의 형태로 통치했을 것이라는 어느 이의 주장은 매우 무색한 것이다.

버이 삐떼르 신부의 기록은 조선과 일본의 관계 그리고 그에 대한 정세를 정확히 잘 판단하였다. 그리고 예언처럼 우리의 미래까지 언급한 것은 그의 통찰력이 매우 깊음을 증명하고 있다. 오늘도 국뽕에 취한다.

#‘일본의 지배와 엄격한 통제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한국에 대해 영원한 지배를 존속시킬 수 없을 것이다. (...) 현재 일본이 한국에 대해 강요하는 것들은 한국인의 자존심이 전면에 등장하게끔 유도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한국인들은 일본의 침략자들보다 우수하다. 일본이 한국에서 그들이 원하는 모든 바를 성취한 후 한국을 식민지배의 성공적인 예로 만드는 것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한국은 다시 주권을 찾을 것이다.’ (탁현민 비서관 글에서 버이 삐떼르 신부의 기록 인용)

김정숙 영부인의 버이 삐떼르신부의 기록 낭독: “파리, 베를린,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아시아로 출발하는 급행열차들이 모두 부산으로 향한다. 이 민족과 국가에게 미래의 중요한 역할이 기다리고 있음을 항상 확신하고 있었다



기사등록 : 김영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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