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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돈하 역사칼럼, 삼산형제

이순락기자 0 97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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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재야청년사학자 도경당 류돈하 ~


서애 류성룡 선생을 모신 병산서원은 서애 사후 그 수제자 우복 정경세 선생을 중심으로 한 후학들이 건립하였다. 그 전신은 풍산류씨 문중의 교육기관인 풍악서당이었다가 서애의 학덕과 공덕을 기리는 제사의 기능과 학문의 기능을 갖춘 서원으로 거듭나게 되었다. 무엇보다 호계서원의 호파와 양대산맥을 이루며 영남남인들의 여론이 형성되던 장소이기도 하다.

 

최근에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에 등재된 병산서원은 건축물 만대루를 비롯하여 그 자연경관 역시 빼어나거니와 도산서원과 더불어 안동을 대표하는 서원이라 할 수 있다. 서애의 스승인 퇴계를 배향한 도산서원은 그야말로 퇴계의 숨결이 베어 있는 곳이다.

 

왕산 허위 선생의 백씨(맏형)인 방산 허훈 선생은 도산.병산 양 서원의 원장을 지냈다. 영남학파의 거목이다. 그 스승은 계당 류주목과 허전이었으니 계당은 서애의 9대손으로 낙파 류후조의 아들이다. 즉 서애와 우복 학통을 계승함과 동시에 성재 허전을 통해 한강 정구와 성호 이익의 학통역시 계승한 것이다. (방산 허훈 선생의 사돈은 한주 이진상 선생)

정통 영남학파와 실학으로 발전한 근기남인의 학문을 이은 방산 허선생이 도산.병산 양 서원의 원장을 지낸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아울러 방산은 구한말 의병장이기도 하다. 을미사변 이후 이상룡 선생의 외삼촌 성대 권세연 선생의 편지를 받고 을미 의병에 참여하였으니 그의 학문활동과 의병활동은 안동과도 상당한 관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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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산 허훈 유묵 ~

 

방산 허선생의 두 아우 성산 허겸, 왕산 허위도 맏형과 더불어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방산이 세상을 떠나기전 나라의 명운은 다하였다. 대한제국 최후의 의병운동이 들불처럼 일어날때 방산이 전답 60만평을 두 아우에게 군자금으로 내어준 것은 가히 위대한 역사의 한 장면이다. 방산의 별세, 13도 창의군을 이끌었던 왕산의 순국으로 삼산형제 집안의 비극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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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산 간찰 ~

 

뿔뿔이 흩어졌다. 만주로 가고 연해주로 갔다. 연해주로 간 자손은 독재자 스딸린의 탄압을 받아 중앙아시아 등지로 강제이주되었다. 그들은 그렇게 생명과 재산을 조국의 광복에 기꺼이 희생하였다.

방산 허선생의 5대손이 바로 참여정부와 문재인정부에서 행정관을 지내며 중추적 역할을 한 허소이다. 이 글을 그도 볼 것이라 생각되기에 조심스럽지만 나는 그에게 있어 죄인과 같다.

 

삼산형제는 항일광복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겼다. 독립운동가하면 애써 김구를 떠올리고 류관순을 떠올린다. 모두 훌륭한 분인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처절한 희생과 무서운 규모로 논하자면 삼산형제를 빼놓을 수 없다. 항일광복사의 본류와 중심에 계셔야 할 분들이다. 삼산형제의 국권회복과 조국광복 그리고 새나라 건설의 꿈과 그 사상적 기반이 어디에 있었던가를 상기하면서 기미만세혁명 삼일절을 기념한다.

(사진은 방산 허훈 선생의 유묵과 간찰. 구미성리학역사관 소장.)


도경당 류돈하 쓰다.

 




기사등록 : 김영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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