폰 카메라 산책, ‘금오산 채미정'
~ 금오산 금오지 위쪽에 있는 채미정 입구의 정경 ~
그렇게나 화사하고 아름답던 금오천 벚꽃은 모두 어디로 갔을까? 금오천에는 그래도 시민들의 흥겨운 발걸음들이 몹시도 분주해 보였다. 구미소상공인연합회 회원들을 비롯한 각종 먹거리 볼거리 행사가 떠들썩한 모습들을 뒤로 한 체 금오지 위쪽 공용 주차장 맞은편 채미정으로 발길을 옮겼다.
~ 채미정 입구를 지키고 있는 야은 길재 선생의 유명한 회고가 비석 ~
~ 채미정 입구 회고가 비석 맞은편에 있는 '채미정정화기념비'가 박정희 대통령 표면제자, 이효상 당시 국회의장 글, 글씨 김충현 선생이 썼음을 알리고 있다 (기념비의 일부 사진) ~
지방분권운동 구미대표이자 근현대사에 관한 독보적 지식을 가진 향토사학자인 김종길 선생과 함께 본지 기자가 동행, 폰카를 열심히 누른 곳은 우리나라 성리학의 대가 야은 길재선생을 기리는 금오산 채미정이었고, 그래서 채미정을 답사하였다.
~ 김종길 선생이 야은 길재선생의 절개를 기리는 현판 옆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채미정은 금오산 금오지 위쪽에 있는 공용 주차장 건너편, 즉 금오산을 오르는 길 오른편에 기품 있는 학자의 모습처럼 자리하고 있다. 채미정은 조선 영조 때 야은 길재선생의 학덕과 충절을 기리기 위해 관민이 뜻을 모아 정자를 짓고 채미정이라 이름 지었다고 전해져 오고 있다. 채미정이란 이름은 백이와 숙제가 수양산에 숨어 고사리를 캐먹다 굶어 죽었다는 고사에서 따온 것이라 하며, 길재의 두 왕조를 섬기지 않는 충절을 백이와 숙제에 비견한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채미정 입구에는 '채미정정화기념비'가 있으며, 1978년 6월 정화기념비 글자는 박정희 대통령이, 글 내용은 이효상 당시 국회의장이, 글씨는 김충현 선생이 썼음을 알리고 있다. 채미정 앞에서 흐르는 맑은 개울물빛이 길재 선생의 고결한 마음을 알리는 듯 비춰주고 있었다.
채미정 입구 다리 위에서 보이는 수문장처럼 좌우에 우뚝 선 두 그루 고목은 운치가 있는 정겨운 모습이고, 그 뒤 채미정 정자와 딸린 건물들이 곱게 핀 홍매화와 함께 방문객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채미정 정자에는 여러 현판 서각들이 줄지어 있었으며, 김종길 선생이 본지 기자에게 많은 설명을 해주었다. 다만 본지 기자가 청각장애와 나이든 탓으로 설명을 일일이 기억할 수 없어 사진은 촬영했으나 부연설명을 할 수 없어 아쉽지만 중요한 몇몇 컷만 보도하게 되었다.
~ 채미정 정자 입구의 문 이름이 흥기문이다. 이는 필시 구미가 흥하게 일어서라는 염원을 담은 깊은 뜻이 담겨 있음이 틀림없다. 그래서 구미는 반드시 크게 일어설 것이리라 ~
우리 구미가 회색 공단도시라는 이미지는 벗을 수 없지만, 시내 중심가에서 자동차로 불과 5~6분이면 금오산, 금오지며, 성리학 역사관, 그 성리학을 있게 한 야은 길재선생을 기리는 채미정이라는 문화재 등등이 있어 구미가 유서깊은 선비의 고장이고, 너무도 아름다운 풍광을 가진 살기 좋은 아름다운 고장임을 보여주고 있었다.
이순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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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등록 : 김영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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