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열린광장 > 독자참여 문학코너
독자참여 문학코너

문헌서원, 600년 배롱나무를 보며

0 9852

a47c6a6acd4101908a6fe8b99f31ac0d_1565572975_228.jpg
~ 필자, 김진철 목사, 충남 서천군 화양면 오순교회 담임 ~

입추가 지났음에도 폭염주의보를 알리는 긴급재난 문자가 요란하게 뜬다. 그 뜨거운 햇살을 고스란히 온 몸으로 받아 붉게 타오르는 배롱나무 꽃들이 하나의 계절을 보내고 또 새로운 계절을 맞는 8월의 막바지를 정염으로 불태운다. “사람이 죽어 정한을 남기면 붉은 노을이 된다고 했던가. 이루지 못한 꿈과 사연이 그리도 많은가 보다.

 

얼마 전 교회 여신도들이 젓갈 사업을 위해서 강경에 젓갈을 사러 간다고 해서 다녀왔다. 새우젓과 황석어젓, 그리고 소금과 액젓을 샀다. 새우가 잘 잡히지 않아서 값이 올랐다고 하면서도 오래 거래를 한 탓인지 시원시원하게 거래가 이루어졌다. 우리가 가져올 새우젓을 저장한 창고로 갔다. 창고 안은 무척 시원해서 좋아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한기가 들 정도로 추웠다. 추위를 느낀 나는 무언가 생각이 나서 창고의 거대한 문을 자꾸 바라보았다. 혹시 문이 닫혀서 창고 안에 갇히면 어떡하지 하는 쓸데없는 생각 때문이었다. 박범신의 소설 <소금>에 소년 소녀가 발효 창고에 갇히는 에피소드 나온다. 나는 그들의 첫사랑의 애틋한 추억보다 창고에 갇혀 얼어 죽는 두려움을 상상한 한 것이다. 창고의 문은 안에서 열수 없기 때문에 갇히면 큰 위험에 빠질 수도 있다. 강경이 하나의 무대가 된 이 소설에서 작가는 소금을 통해 인생을 이야기 한다.

 

소금은, 모든 맛을 다 갖고 있다네. 단맛, 신맛, 쓴맛, 짠맛. 단것, 신것에 소금을 치면 더 달고 더 시어져. 뿐인가. 염도가 적당할 때 거둔 소금은 부드러운 짠맛이 나지만 32도가 넘으면 쓴맛이 강해. 세상의 모든 소금은 그것 자체만으로도 맛이 달라. 소금에 포함된 미네랄이나 아미노산 같은 것이 만들어내는 조화야. 사람들은 단맛에서 일반적으로 위로와 사랑을 느껴. 가볍지. 그에 비해 신맛은 나에게 시비를 거는 것 같고, 짠맛은 뭐라고 할까, 옹골찬 균형이 떠올라, 내 느낌이 그렇다는 거야. 쓴맛은 그럼 뭐냐. 쓴맛은, 어둠이라 할 수 있겠지.(소금 p.133)

 

이 작품은 소금 같은 인생을 산 아버지들의 이야기를 전해준다. 그들은 고단한 시절, 집안의 미래를 위한 꿈이었고, 처자식들을 위해 자기의 꿈과 사랑을 접고 몸이 부서져라 일하다가 부서져 버린 아버지들이었다. 그리고 끝내 가족들로부터도 이해받지 못하고 소외된 아픔이었다. 베트남전에서 다리를 잃고 돌아와 자살한 아버지, 아들을 대학 보내기 위해 염전에서 미친듯이 일하다 소금 부족으로 죽은 아버지, '치사해, 치사해'를 달고 살며 알코올중독자로 죽어간 아버지들... 거래가 끝나고 상회주인과 여신도들이 나를 불렀다. “목사님 이게 천 칠백만원짜리새우젓입니다.” 하면서 구경을 시켜주었다. 그 비싼 새우젓을 상회주인 선물이라면서 작은 병에 담아주었다.(사진, 강경 새우젓) ;


a47c6a6acd4101908a6fe8b99f31ac0d_1565573136_2534.jpg
~ 강경 새우젖 ~

 

소금과 더불어 이 소설에 또 하나의 은유로 등장하는 것이 배롱나무이다.

그는 배롱나무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배롱나무는 꽃은 물론 줄기도 품격이 남달라 예로부터 선비들의 지극한 사랑을 받았다”(p16) "다른 나무들이 헐벗었다고 느껴질 때도 전혀 헐벗었다고 느껴지지 않았던 게 바로 배롱나무였다. 잎과 꽃이 지고 난 후에도 배롱나무는 제 고요한 품격을 조금도 잃지 않고 있었다. 매끄러운 흰 피부가 그러했고 균현을 잘 잡고 있는 수많은 가지들이 그러했다. 비어 있으면서 차 있는 느낌이었고, 서늘하면서 따뜻했다.”(소금 p.118)

 

가족들의 삶의 무게를 고스란히 짊어지고 가면서. 정말 하고 싶었던 꿈들을 가슴에 묻고 세속적인 삶에 찌들면서도 품위를 잃지 않으려고 애썼던 아버지들의 모습을 배롱나무를 통해서 들려주고 싶었던 가보다.(사진2, 문헌서원 배롱나무)

a47c6a6acd4101908a6fe8b99f31ac0d_1565573179_9221.jpg
~ 문헌서원 배롱나무 ~ 

 

문헌서원에 400년이 넘었다는 배롱나무 꽃이 활짝 피었다. 어느 날 설마 400년이 되었을까 의심이 들어 아침에 공공근로 일을 하러 오신 할아버지께 물었다. “저 배롱나무가 정말 400년이나 되었습니까?” 그러자 할아버지는 “400년이 뭐요. 아마 600년은 되었을 거요. 담장을 보수를 한다고 자꾸 파다가 뿌리가 많이 다쳐서 제대로 못컸어라고 하셨다. 배롱나무 꽃은 작은 꽃들이 차례로 피고 지면서 백일 동안 꽃이 피고, 이 꽃이 지면 가을이 온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배롱나무의 꽃말은 '떠나간 벗을 그리워함'이라고 한다. 오래된 배롱나무를 보면서 박범신의 소설속의 아버지들을 생각하면서 이 세상을 떠난 아버지를 그려보았다.

 

인생의 온갖 맛을 다 겪으면서 가족을 살리려 했던 소금 같은 아버지,

세파에 시달리면서도 인간으로서의 품위를 잃지 않으려 했던 아버지

가족들을 위해서 소중한 꿈을 희생하면서 눈물을 쏟았던 아버지

8월의 뜨거운 햇살을 견디어 내고 붉게 피어난 배롱나무 같이 용광로 보다 뜨거운 삶의 시련을 견디어내고 가정의 웃음꽃을 피우려했던 아버지.




기사등록 : 이순락기자 / gbmnews@naver.com
# [경북미디어뉴스]의 모든 기사와 사진은 저작권법에 따라 무단전재시 저작권료를 청구할 수 있습니다.
0 Comments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KakaoTalk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