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 마 장
많은 이름을 들어도 군중 속 고독 같은데,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들으면 가슴이 설렘같이, 두세 지명은 듣기만 해도 기쁘다. 내 의지와는 상관없이 태어났고, 군대명령으로 머문 지역들이다. 경북 군위군 우보면은 고향이니 늘 들어도 반갑다. 그리고 대구 인근에서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살다가, 멀리 동해안 최전방 소대장 근무를 했던 강원도 고성군 현내면도 그러하다. 외국 같이 신비한 신천지였고, 매일 바다에서 불덩이가 솟아오르는 일출을 보았고, 오케스트라 음악소리 보다 더 좋은 바다 파도와 비무장지대 자연의 소리가 있었다. 오지이지만 즐거웠던 추억들이 가득하다.
인천광역시 부평구 산곡동을 일컫는 백마장도 그러했다. 철마산 때문에 은폐가 잘 되고, 인근에 경인선 철로와 인천항이 있어서, 일제 때 무기를 제조하는 거대한 조병창이 만들어졌고, 일본군이 백마를 타고 다녀서 백마장으로 불렸다. 해방 후에는 그곳에 미군수지원사령부가 머물다가 서울 용산으로 이전하고, 공수특전부대가 창설되었다.
동해안 소대장 생활에 익숙해져 가는데, 특전사령부로 전출 명령을 받았다. 다시 힘든 공수훈련을 받아야 하니 부담이 되었다. 등산가는 높은 산을 정복해서 이면에 누리는 성취감을 알기에 힘든 산행을 즐긴다. 산악인의 마음으로 공수부대에 대한 자신감을 가졌다.
공수부대는 유사시 부대 전체가 비행기로 공중 수송되어 낙하산으로 적지 한 가운데 투입되어, 적 후방 교란작전을 펴는 임무가 있다. 그래서 전원 비행기에서 공중 탈출하여 낙하산을 타고 땅에 내려야 한다. 고공 비행중인 비행기 문을 뛰쳐나올 수 있는 담력을 갖기 위해 힘든 훈련을 받아야 한다. 김포공항 인근 교육장에서 4주간 공수훈련과 남한산성 인근 교육장에서 6주간 특수전교육을 받고, 인천 백마장 5공수특전여단에서 근무하였다.
~ 박태원 목사의 공수특전단 장교(중위)시절 ~
자대에서도 훈련이 반복되었고, 가상 적지로 공수되어 모의전쟁을 했다. 전라도 지리산 일대에 완전무장으로 지역주민들 모르게 야간 비행기와 낙하산으로 침투한다. 민간인이 우리를 발견하면 신고하니, 산악지대 토굴에 숨어서 식사도 하며 활동해야 했다. 각종 작전들을 수행하고 탈출하여, 지리산에서 인천 부평까지 민간인에게 들키지 않도록, 야간 혹은 산악 험한 길로 계속 걸어야 했다. 그 길이 천리이므로 천리 행군 훈련이라 한다. 전라남북도와 충청남도, 경기도 지역을 거쳐 백마장 부대에 도착할 때의 성취감은 대단했다. 군악대의 환영 연주가 있으니 더욱 그러했다. 한편 토굴생활과 천리행군을 두 번 하면서 집시 같은 외로운 마음을 체험했고, 따뜻한 잠자리와 가정의 소중함을 절실히 느꼈다.
만산홍엽이 우수수 쏟아져 내리는 만추 어느 날, 백마장 공수부대 앞 교회에 다니면서 첫눈에 반한 아가씨를 만났다. 집안에 편리한 가전제품이 있어도 전기가 없으면 무용지물이다. 마음에 드는 여자가 있어도 사랑을 고백할 수 있는 용기가 없으면 소용없다. 갑돌이와 백면서생 같은 성격이었지만 공수부대가 용기를 만들어 주었다. 그래서 접근했다.
“내일 저녁 6시 백마장 시내버스 정류장에서 만나요. 자매님과 월미도에 다녀오고 싶어요.”
K양은 소이부답 했지만 승낙한 것으로 간주했다.
다음날 그곳에서 기다렸더니 K양이 왔다. 같이 1번 시내버스를 타고 월미도로 가는데, 버스 안에서 비틀즈의 예스터데이 노래가 흘러 나왔다. 데이트 분위기를 한껏 높여주었다.
K양과 인천 월미도 바닷가를 거니니 행복했다. 저녁놀이 아름다웠다.
“저녁놀이 참 아름답지요?” “아침놀보다 저녁놀이 더 아름다운 것 같아요”
“인생도 저녁놀이 아름다워야겠습니다. 그러려면 좋은 만남이 필요하겠습니다.”
“좋은 만남이란 말이 좋군요. 저도 좋은 만남을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저는 집이 경북 군위군 산골이고, 학교는 대구에서 했습니다.”
“저는 백마장에 이모 집이 있어서 놀러 온 것이고, 집은 충남 조치원입니다.”
“지난번 전라도 지리산에서 천리행군을 해서 충청남도 지역을 거쳐 부대에 왔어요. 그때 충남 어디쯤엔가 사랑하는 여자가 숨어 있는 것 같았어요.”
K양이 그 말을 무슨 뜻으로 이해했는지는 몰라도 얼굴을 붉혔다. 그러면서 대화가 깊어졌고 이심전심이 되었다. 천생연분의 좋은 아가씨를 만났다는 생각을 하면서 말을 이었다.
“제가 고등학교 2학년이었던 1969년에 자매님은 여중생이었겠습니다.”
K양이 네 살 작다는 것을 알고 대충 계산해서 말한 것이었다.
“맞아요. 그런데 1969년에 여중생인 것이 무슨 특별한 사연이라도 되나요?”
K양의 질문에 그렇다고 대답하면서 고등학교 2학년 때 얘기를 했다.
“그해 가을 설악산 수학여행을 가지 못하고 쓸쓸한 마음으로 구미 금오산을 갔는데, 길옆에 있는 구미여중 학생들이 몹시 행복해 보였어요. 그들 중 하나가 제게 애인되어줬으면 하는 소원이 생겼어요. 그러나 저는 몰골이 초라했고 열등감에 사로잡혀 용기가 없었어요. 그때 신기루처럼 한 여중생이 나타나 제 애인되어 주었어요. 그 여중생이 눈물겹도록 고마웠어요. 그때 신기루처럼 나타났다 사라진 여중생이 지금 제 앞에 있는 자매님 같아요.”
그 말을 듣던 K양이 잠시 머뭇하더니 품에 안기었고, 나도 껴안았다. 한편 고등학교 2학년 때 일이 사실이지만, 이렇게 연결해서 말함으로 K양을 감동하게 한 내가 대견스러웠다. 한참 후 K양이 품에서 떨어질 때, 군복 잠바를 벗어서 상체를 덮어주었더니 홍조를 띠었다.
~ 신혼의 시절의 아름다운 추억을 보여주는 경상도 사나이 박태원 목사와 충청도 양반댁 규수 ~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말처럼 서로 다른 환경에서 성장했지만, K양과 끈끈한 줄로 묶여지기 시작했고, 그 줄은 평생 행복을 퍼 줄 두레박줄 같았다. 그리움과 사랑을 표현하며 자주 만나는 중에 K양이 마음을 열어 줘서 결혼하게 되었다.
백마장 공수부대에서 훈련받은 대로 북한 적지에는 침투하지 않았지만, 시골뜨기가 적지 같은 수도권에서 평생 울타리와 버팀목이 되어 준 좋은 아내를 얻었으니 이는 최고 전과이다. 군대는 타자에 의해 선택된 인생을 어떻게 유용하게 보내야 하는지를 배우는 곳으로 군대는 군대(軍大)가 되었고, 백마장은 한 인간으로 완성되는 화룡점정이 되었다.
내가 제대함으로 우리는 경북 구미로 이사 왔고, 공수부대도 외곽지역으로 이전하고 그 자리는 대단위 아파트단지가 되었다고 한다. 인터넷 검색을 통해 변두리 백마장이 지금은 상전벽해와 같이 도심이 된 것을 알았지만, 가고 싶지는 않았다. 옛 모습의 기억에서 멈추고, 사랑의 추억을 그대로 간직하고 싶어서이다. 댐으로 수몰되고 혹은 재개발되어, 추억의 장소들이 하나 둘 사라지니 안타깝다.
평범한 산이라도 그리운 임의 무덤이 있다면 특별할 것이며, 4월 벚꽃 핀 기간이 짧아도 오래 기억되고, 이스라엘 이집트 성지순례여행도 두 주간이지만 잊지 못하듯이, 백마장에서의 두 해가 짧지만 좋은 아내를 만났고 공수부대 군인정신을 배운 대학이니 늘 그립다. 40년 전 일이지만, 죽은 과거가 아니라 살아있는 과거이다. 바다의 외딴섬도 실상은 바다 밑 땅으로 육지와 연결되었으니 외롭지 않다. 백마장의 과거 세월도 지금과 연결되어 있다.
기사등록 : 이순락기자 / gbm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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