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 길
조은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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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6.04 15:34
봄 길
이존태
수십 년 동안 봉인되었던
그리움
철조망에 묻은 피의 흔적을 따라
단 한 치 밑도 알 수 없는 시멘트 바닥 저 깊음에서
또 다시 봄이 오는 연습을 한다
피어나기 전부터 타오른 오랜된 설렘은
백두대간 골짜기마다 들썩이고
옷깃에 덕지덕지 묻은 세월을
문지르고 닦아낸다
이미 하얗게 변해버린 머리카락에서는 한바탕 바람이 인다
너무 오래된 얼굴이라 혹시 알아보지 못할까봐
밤새 입술이 바싹 마르고
사진 한 장 남기지 못한 후회로 내 혈관이 터질 듯한다
지금은 산길이 두렵다
어둠도 두렵다
잠을 이루지 못해 불을 껐다가 또 켜본다
눈을 감고 마음도 감아본다
그래도 살 떨리는 저 소리를 막아낼 수 없구나
그게 다 봄이 오는 소리라고 해도 좋다
막혔던 길들이 열리는 소리라도 좋다
아니 죽음의 소리라고 해도 좋다
이른 봄 마디마디에서 한숨 터지는 소리가 한탄강 물결에 출렁거린다
*작가소개: 이존태
*완산여자고등학교 교장
*위 시는 문학 전문지 <시와 산문> 2020 여름 106호에 실린 글입니다.
기사등록 : 조은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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