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존태 詩, 낙엽 외 1편
지금 꼭 떠나야만 합니까
그렇게 믿을 수 없습니까
어느 날 시뻘겋게 낯꽃이 변하더니
기어코 등을 돌리고 떠나버린 그대
내 뜰에 수북이 쌓인 그대 편지
하나하나 돌아봅니다
푸른 손으로 쓰신 글씨마다
믿음이 가득했습니다
그대가 꽃으로 써주신 사연을 읽다가
열병을 앓았습니다
끝내 사랑을 깊이깊이 품었습니다
산도 심어주고 바다도 묻어주었습니다
그대에 대한 꿈을 내 심장에 담을 때는
뜨거워서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수많은 밤을 그리움에 떨었습니다
주신 것은 사랑이지만 받은 것은 고통이었습니다
떠나는 이유를 물을 새도 없이
내 뜰에 피눈물이 묻어나는 사연만 남긴 그대
꼭 그렇게 떠나셔야 했습니까
진정 나를 믿을 수 없었습니까
나무야
나무야
세월을 한바퀴 더 돌고
이 자리에 섰는데
너는 알지
나의 모습을
전설을 들려주고
꿈도 배우던
삼촌네 원두막
지금은 흔적도 없구나
첫사랑 일구었던 그 꽃밭
꼭 우리 민대머리 그대로다
나무야
풍문으로라도 들었지
내가 살아온 삶을
헛되다고는 할 수 없지만
진실하지 못했구나
나라가 어려울 때
총알을 피해 뒷전으로 숨었고
그렇다고 불꽃이 되어 활활 타오르지 못했다
무엇보다 두 동강 난 이 땅을 위하여 울어보지도 못했다
나무야
천년도 살고 이 천년도 산다는데
내 고백을 꼭 듣고 싶냐
스스로 내가 잘못했다고 말하기를 바라느냐
날마다 화장을 하다 보니 내가 내 얼굴조차 구별하지 못하지만
나무야 너처럼
내 두 손 들고 하늘을 향하여
부끄럼 다 토해내야지
그러나 나무야
내가 사람이었다면
너를 지금까지 내 문 밖에 세워두지 않았을 것이다
나무야
이존태 약력
전주완산여자고등학교 교장 역임. 전주예벗교회 원로장로
2019년 <동방문학> 신인상 수상 전북문인협회회원 전북PEN문학회회원 교원문학회회원
시집 <죄인의 꿈> <꽃의 고백>
55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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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등록 : 김영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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