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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강문학》 16호 시부문 신인상 수상작/ 안양자

조은자기자 0 11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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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원사에서

                                                      안 양 자

 

 

몇 세기 버텨온 우레의 잔재

이제 남은 한 방울의 낙수로

웅덩이를 파겠습니다

 

사막엔

따로이 밧줄을 띄워드리리다

 

바다엔 야자수를 심고

그들의 천막엔 해빛을 갈아 두지요

 

사방으로 흩어져 세월이 넘나들고

허공 없는 집

그러면 나는

집시가 되기로 하오리다.

 

 

 


나를 슬프게 하는 애절한 우리들은

 

                                                                   안 양 자

 

 

보고 싶은 사람들

그들은 나의 무엇이며 나는 그들의 무엇일까

우리는 서로 무엇이기에

슬프게 하고 눈물 흘리게 할 수 있을까

이렇게 가라앉은 채로 숨어가는 세월은

어느 정도의 세월이 흐르면

어떤 표정의 우리를 남겨 놓을까

문득문득 다그치는 망막함

어떻게 무엇에 밀려 흘러가

어디에 머물다 스러져버릴까

나를 슬프게 하는 애절한 우리들은.

 

 

 

 

그날 이후

                                                     안 양 자

 

 

붉은 햇덩이를 지고

오전의 등성이를 넘어가야 합니다

곧 돌아오지요

그대 숨 쉬지 않아도 살아 있으니까요

 

이 빗속에 갈대숲을 지나

폭포수 아래 배를 띄워야 합니다

불을 지펴 놓고 가지요

그대 살아 있지 않지만 남아 있으니까요

 

!

하지만 아무도 없군요

그날 이후

여럿인 우리는 혼자이니 말이예요.

 

 

   

 ​자화상

                                             안 양 자

 

 

한 아이를 알지

오랫동안 똑 같은 한 아이를 알지

달려가도 서 있는 아이

선채로 멈추지 않는 한 아이를 알지

 

그 아이를 알지

시선이 걸려 거두지 못하는 아이

풀어 놓을 해답이 두려워

꼬옹 꽁 물음을 안고 사는 아이

그것 밖에 모르는 그 아이를 나는 알지

 

그 아이는 알지

오랫동안 똑 같은 그 아이는 알지

소리보다 큰 침묵

선 채로 멈추어도 갈 수 있는 길을

그 아이는 알지

 

헐렁하게 입고

가득 양손에 들고

여닫힘 없는 문틈에 서 있는 그 아이를

나는 오랫동안 보고만 있지.

 

  

* 작가소개: 2019<한강문학>으로 등단. 동우재문학의집 회원.

* 당선 소감

 모두는 그리움이며 시입니다

 

나는 많은 조건을 가지고 있다. 나는 변명을 할 충분한 이유들도 있다. 나는 꼿꼿하다. 나는 나름대로 정갈하며 깔끔하게 살아간다.

어느 날 나는 많은 것을 둘러보았다. 꼿꼿하지 않을 수 있는 조건 정갈하지 않아도 될 변명거리, 흐트러져도 말할 수 있는 여러 가지 이유들, 내가 말하지 않을 수도 또 말할 수도 있는 그 무엇들, 모두는 나의 그리움이며 시입니다.

두서없이 휘적휘적 가는 저의 삶을 줄을 맞춰 보아야겠기에 잠시 서 봅니다. 문득문득 멈추어서는 이 길에서 생각지 않았던 큰 선물을 받았습니다. 이곳까지 이끌어주신 남진원 선생님과 심사위원님께 감사드립니다.

 

* 심사평  

그는 과연 누구인가?  

 

법화경法華經천의무봉天衣無縫 스토리를 보는 듯 자유로운 정신! 덕원사에서. 이 글을 쓴 안양자는 누구인가. 극락정토 안양쯤은 또한 세월 정도는, 마실 다니듯 그 정신이 그렇게 날렵하단 말인가. ‘한 방울의 낙수로 웅덩이를 파겠다며 사막엔 따로이누굴 위한 밧줄을 띄워드려주고, ‘바다엔 야자수를 심고’, ‘그들이라고 한 누군가를 위하여 천막엔 햇빛을 걸어 두, 사람이 아닌 세월이 넘나들면서 허공 없는 집집사가 되기로낙찰落札 하겠다는 그는 과연 누구인가? 그저 꿈인가?

그들과 나를 하나로 묶은 우리는 슬프게 하고 눈물 흘리게하는 존재로 규정해 놓는다. ‘세월갖고는 해결할 수 없는 망막함의 연기緣起어디에 머물다 스러져버릴까’ ‘나를 슬프게만드는 애절한 우리들’. 이 사람이 정말 누구일까?

그날 이후, ‘이 사람이 아무도 없는 시공간에서, ‘붉은 햇덩이를 지고어금니 깨물 듯 혼자’, ‘살아있고’, ‘남아있겠지만, 곧 돌아오겠다며 그들을 위해 약속을 한다. 언약의 증표로 불까지 지펴놓고. 이 사람이 사람일까?

자화상을 보면서 소리보다 큰 침묵의 무한한 무게감을 지닌 한 아이를 이미 알았고, ‘그 아이를 (이미)기에 그 아이는 (이미)고 있었다고, 이 사람의 정체성이 아이임을 밝힌다. 그렇다면 이 한 아이를 이미 알고 있었던 이 사람은 누구인가? ‘헐렁하게 입고’, ‘가득 양손에 들고’, ‘여닫힘 없는 문틈에 서 있는 그 아이를’, ‘오랫동안 보고만 있는’, ‘를 승화된 연민으로 이 사람을 지면에 드러내고자, 등단작으로 굳이 4편을 선택한 이유다. 스토리가 하 수상해서.

남진원(추천), 권녕하(심사평)

 





기사등록 : 조은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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