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두]장로 7인 중 6명 시무사임 사태 ‘특종 뉴스’라는데…
최근에 시내 모 교회에서 일어난 일이다. 시무장로 7인 중 6명이 일괄 시무사임 하는 사태가 발생한 것이다. 내용여부를 떠나서 ‘아니 이럴 수가?’라고 경악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목사와 시무장로간의 다툼에서 장로측이 TKO 패한 것. 그렇지만 장로 측의 입장을 들어보면 ‘지는 것이 곧 이기는 것이다’였다. “더 이상의 다툼이 있게 될 경우, 결코 교회에 덕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일괄 시무사임’을 택했다는 것이다. 그런 면을 보면 장로들의 그릇이 더 크게 보여 지고 있다.
이런 사태는 정말이지 보기 드문 사태로서 사람들이 말하는 ‘특종감’이다. 특종감이라고 하는 것은 지역 내 기독교 교계 뉴스에서의 경우일 뿐이다. 교계에서 흔히 얘기하는 ‘세상적’인 기준에서 보면 그리 대단할 것도 없는 일임에 분명하다. 더구나 요즘처럼 기독교가 사회로부터 점점 홀대받는(?) 현상을 보면 아예 이런 정도는 별반 관심 자체가 없을 수도 있을 것이다.
필자가 오랫동안 ‘기자’신분으로서 관계했던 ‘기독교계통 신문사’에서 최근에 사임을 했다. 필자 스스로는 지역의 기독신문 지킴이(?)로서 사명감과 늘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가짐으로 임했던 것이다. 그러나 경영자 측의 입장과 배치되는 ‘글’이 있고부터 얘기가 달라졌던 것이다. 어떤 때는 사회정의 구현 차원에서 글을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가, 정작 그런 거창한 정의의 백분지 일도 안되는 정도의 글을 썼음에도 용납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 글을 활자화한 것도 아니고, 그 글을 내리고 전혀 다른 새로운 글을 썼음에도 불구하고. 즉 월 수당(?)에 대한 지급보류라는 치졸하기 짝이 없는 작태에 ‘사직’을 결심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언론의 사명이라는 명제를 두고 볼 때 과연 진정한 의미의 ‘특종’은 어느 것이어야 하는가. 위에서 먼저 언급한 ‘장로 6명 사임’과, 바른 글을 쓰지 못하게 하고 비열한 방법으로 ‘스스로 알아서 나가기’를 유도하는 언론사 이 둘 중에 서 말이다.
우리들 기자들 사회에서 흔히 하는 말이 있다. ‘언론이 바로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는. 더구나 ‘정론직필(正論直筆)이라는 거창한 구호도 있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기자들이 처한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왕왕 있다. 기자도 밥을 먹어야 하니까(언론사도 경영을 해야 하니까) ‘광고’에 목을 매달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그 광고 하나 얻으려고 광고주들에게 잘 보여야하는 현실이 기자와 언론사의 목을 조이게 하는 것이다. 긴 설명을 하지 않아도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를 독자들은 이해할 수 있으리라 믿는다. 기독교를 믿는 입장에서 특히 교회 목사의 어긋난 행태를 최소한의 표현으로 지적하는 차원에서 글을 썼던 일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문사의 방침에 반한다는 것으로 보도(게재)하지 못했던 것이다. 결국 기독언론이 자신에게 주어진 최소한의 책무마저도 방기한 것이 아닌가.
교회에서 목사와 장로간의 의사충돌과 갈등으로 빚어지는 일은 흔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본 칼럼의 제목에서 쓴 것처럼 하나의 규모 있는 교회에서 장로 6명이 시무 사임했다는 것은 어쩌면 심층보도를 해야 될 정도일수도 있다. 쉽게 말해서 목사와 장로간의 지나간 일은 상관없다고 치자. 그런데 이런 사태 이후부터 목사는 1인의 장로를 앉혀놓고 통제 없는 전횡을 일삼을 수 있게 된다. 이게 과연 바람직한 일일까. 아무튼 당해 교회 목사나 장로들이 원하지 않고, 교회에 덕이 되지 않을 수 있기에 보도를 않기로 했다. 사회 현상에서도 이런 유(類)의 일은 어렵지 않게 본다. 그런데 언론기관에서 (아무리 내부적인 일이라 해도) 기자의 취재와 보도에 대하여 통제와 간섭이 그 정도가 지나치다면 그런 언론을 어떻게 보아야할까. 머리가 점점 더 무거워 진다.
기사등록 : 이순락기자 / gbm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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