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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두칼럼, "인류문화의 시원(始原), 홍산문화 유물전시회 소감"

이순락기자 0 201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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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頭 이순락, 본지 발행인 ~



홍산문화 ~ ‘신석기와 청동기가 섞인 B.C.4700~B.C.2900년경 문명

 

홍산문화(紅山文化) 유물전시회가 구미예술회관 제2전시실에서 420()부터 25()까지 개최되었다. 이번 전시회는 홍산문화 유물 연구회(회장 장영도)가 기획한 것으로서 보유한 유물을 시민들에게 선을 보이고, 우리 민족의 자긍심을 고취시키는데 크게 이바지했던 전시회였다고 평하고 싶다. 비록 필자가 고대사연구나 무슨 유물관계 전문가도 아니지만 귀중한 문화유물을 직접 보고 느꼈기 때문이다.

 

전시회 주최 측에서 특별히 제공한 전인철 지음 나는 왜 홍산문화에 빠졌나, 紅山文化라는 책자에 나오는 설명을 종합적으로 살펴보면 이렇다. 홍산문화는 발해연안 문명이다. 우리 민족의 시원인 고조선 문명으로서 중국 만리장성 북동부에 존재하였던 중화인민공화국 네이멍(내몽고)자치구 츠펑시와 랴오닝성 조양시 일대에서 적출된 문화유물이 이를 말하고 있다.

 

홍산문화 ~ 6000발해문명이며, 한반도 문화

 

내몽고 지역 일대에서 적출되는 홍산문화는 주로 옥패, 옥거북, 옥룡 등 매우 다양하며, 이들 옥기들에서는 자연과 우주 혹은 신의 형상 등 샤마니즘적 영성을 느끼게 하는 기물들임을 알 수 있다. 이는 고대 환국(桓國, 고대 첫 국가의 의미)의 시대 문화유산이며, 우리들의 문화이다. 따라서 이번 전시회에 전시된 각종 유물들은 6,000여 년 전 원시의 문화가 생생하게 재연된 발해문명이며 반도문화인 것이다.

 

그런데 필자가 홍산문화 유물을 보고 느낀 것을 짧은 몇 마디로 표현하기엔 적절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필자의 주관적 느낌은 동화 같은 전설 속을 거닐며 직접 보고 느꼈다.’는 것이다. 주요 사항 몇 가지를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다만, 필자는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차원에서 느끼며 공감할 수 있는 점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첫째, 도장(印章) 문화가 발달되어 있었다는 점.

둘째, 익선관, 장군상 등 옥 조형물을 보면 의복문화가 상당수준으로 발달했다는 점.

셋째, 우주인과 조우(遭遇) 내지 교류가 있었을 것 같다는 점.

넷째, 각종 조형물에서 풍기는 섬세한 예술성과 기교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발달해 있었다는 점. 더구나 각종 조형물의 소재가 옥과 금강석에 비견되는 무겁고 단단하기 짝이 없는 운석(추정)을 사용했다는 점.

다섯째, 남녀 간의 성생활(sex)에 대한 표현이 상당히 개방적이라는 점.

여섯째, 신석기 시대의 원형 불교, 십자가 그리고 이집트 파라오 상()이라는 불가사의한 샤마니즘적 조형물을 접했다는 점.

일곱째, 홍산문화 유물에서 남자의 상투와 태극과 팔괘문양 등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우리의 조상 환국(桓國) 고조선 문화라는 점이다.

 

위에서 언급한 내용들을 차례로 간략하게나마 좀 더 설명해보고자 한다.

 

첫째, 신석기 시대 도장, 인장(印章) 문화가 발달되어 있었다는 점은 전시물에서 보여준 각종 옥으로 된 조형물의 밑바닥에는 상형문자로 조각되어 있어 오늘날의 인장과 꼭 같은 것이다. 도장은 부족 혹은 씨족의 족장들이 사용한 것으로 추정되며, 도장을 사용했다는 것은 당시에 이미 권력과 재산권의 표시를 상징적으로 도장을 통해서 나타내고 있으며, 그 유구한 역사와 전통이 오늘에 이르기 까지 전해져 오고 있다는 것이다.

 

둘째, 익선관, 장군상 등 옥 조형물을 보면 의복문화가 상당수준 발달했다는 점은 전시된 유물 가운데 익선관을 포함, 제사장과 장군상 등을 보면 그렇다는 것이다. 즉 신석기 시대부터 의복문화가 상당수준으로 발달되어 있었다는 것을 볼 수 있게 하고 있다. 전시회를 개최한 장영도 홍산문화유물연구회장의 설명에 의하면 당시에 이미 누에고치를 이용, 실을 뽑았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는 것이다.

 

셋째, 우주인과 조우(遭遇) 내지 교류가 있었을 것 같다는 점은 무겁고 단단한 돌(운석 추정)에 양각으로 우주인과 로켓트, 우주선이 새겨져 있고, 크리스탈로 만든 우주인상을 보면 영화 이티(ET)에 나오는 것과 흡사한 형상인 것이다. 성경에서도 에스겔 에 서술한 것을 보면 우주선을 연상케 하는 장면이 있음과 같다. 이러한 조형물은 단순한 상상만으로는 불가능한 일이 아닐까라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넷째, 각종 조형물에서 풍기는 섬세한 예술성과 기교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발달해 있었다는 점. 이것은 신석기 시대 작품이라고는 믿기 힘들 정도의 정교한 테크닉과 심오한 예술성이 배어있는 점을 말한다. 마치 오늘날의 초정밀 가공을 위한 씨엔씨(CNC) 기계 내지 레이저 가공기(加工機)를 이용하여야 제작 가능한 고차원의 정교한 기술이 요구되는 것으로 보였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놀라운 것은 운석에 상감(象嵌)으로 조각한 탁월한 예술적 감각은 경탄해마지 않는 점인 것이다.

 

전시된 홍산문화 유물들은 신석기 시대와 청동기시대 제작품으로 추정되지만 특별한 제작공구가 없는 상태였다면 아마 수 십 년, 혹은 조상 누대에 걸쳐서 조각품을 만들었을 것이고, 그렇다면 제작자들은 예술가들로서 씨족이나 부족사회에서 그들이 오직 그러한 공예품을 만들 수 있도록 집중적인 지원이 있었음을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 달리 말하면 예술품 작가들이 먹고 사는데 지장이 없도록 씨족 내지 부족 차원에서 적극적인 뒷받침을 했던 살기 좋은 태평성대의 시절을 가졌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섯째, 남녀 간의 성생활(sex)에 대한 표현이 상당히 개방적이라는 점.

녹색 옥과 흑색 옥으로 조각된 남녀 간의 성행위를 하는 모습을 보노라면 너무나 편하고 환희에 찬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작은 인형크기의 조각물이지만 남녀 간의 교합하는 모습이다. 또한 남자의 형상에서 성기의 우뚝 선 힘찬 모습을 감추지 않고 있다. 특히 남자의 성기는 다산(多産)과 풍요를 상징하는 것이라고 한다. 한편 그것은 성과 성생활에 관해서는 오늘날에 비해서 훨씬 자연스럽고 사회적 지지와 공감을 받았음을 말하는 것이 아닐까. 물론 당시에는 종족 보존과 번식의 차원이라는 개념도 당연히 있었을 것이라는 추론도 가능할 것이다.

 

여섯째, 신석기 시대의 원형 불교, 십자가 그리고 이집트 파라오 상()이라는 불가사의한 샤마니즘조형물을 접했다는 점.

즉 가장 놀라운 조형물은 십자가 형상 내부에 절()자 표시가 있다는 점이다. 장영도 회장의 설명은 ()자는 십자가의 원형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다만 필자의 생각은 조금 다르다. 그것은 필자가 기독교(개신교) 장로(은퇴한 원로장로)의 신분에 있기 때문인지 모른다. 즉 절()자가 십자가의 원형인지 모르지만 기독교가 결국 불교를 품는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여 지고 있기에 그렇다(다만 종교적 해석의 관점이 각자 다를 수 있을 것이다).

 

홍산문화 유물전시회 팜플렛에 석가 이전의 원형불교로 신석기 시대 원형불교인 부처상사진과 설명 속에서 영국의 옥스퍼드 대백과사전에 석가는 단군(동이)족의 후손이라고 되어 있다고 기록하고 있다. 단단하기 짝이 없는 운석(?)에 양각으로 조각된 신석기 시대 원형불교 부처의 모습은 예술적, 미술적, 조형적인 형상은 현대인으로서도 도저히 작품화하기 힘든 뛰어난 예술품 이라고 팜플렛에서 설명하고 있다.

 

포대화상이라고 명명한 승려의 불공을 드리는 조각품은 머리 윗부분에 절()자 각인되어 있고, 이는 만사형통의 의미와 길상과 행운을 상징한다고 하는 설명에 더하여 조각상의 뒷면에 북두칠성의 별자리가 새겨진 것은 팔방(八方)을 의미한다고 한다.

 

또한 이집트 파라오의 두상(頭像)과 입상(立像), 파라오의 미이라 모양을 보면 우리 조상들이 이집트에 홍산문화를 전했을 것이라는 추론을 가능하게 한다. 고고인류학자의 해석이 요구되지 않을 수 없어 보인다.

 

일곱째, 홍산문화 유물에서 남자의 상투, 그리고 태극과 팔괘문양 등을 보여주고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우리의 조상 환국(桓國) 고조선 문화라는 점이다.

녹옥으로 만든 상투를 틀고 있는 남성상은 그의 힘찬 남근(男根)도 보여주고 있는데 남근에 관해서는 이미 앞서 설명한 바와 같다(다섯째).

 

그리고 태극문양과 팔괘 형태를 작업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 그것은 우리 조상 전래의 토속 신앙을 묘사하고 있음을 알 수 있게 한다. 음양오행과 풍수지리설이 신석기시대부터 유래됐음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형상을 보여주는 유물은 우리 한민족(韓民族) 고유의 문화라는 것을 여실히 증명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홍산문화는 우리민족 고유의 문화이면서 인류문명의 시원(始原)이라는 사실을 결코 부정할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나 범인류적, 역사적 의의가 너무나 큰 홍산문화 유물전시회가 우리 구미지역에서 한 향토역사학자에 의해 기획되고 전시되었다는 점은 너무도 자랑스럽지 않을 수 없다. 차후 언제 또 다시 전시회가 개최될지는 주최자의 소관사항이겠지만 바라는 바는 연례적으로 전시회가 개최되어 많은 시민 나아가 국민에게 보여주고 민족적 자긍심을 더 높일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기를 기원하는 바이다.

(2021.4.27.)

 

광두(光頭)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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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등록 : 이순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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