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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두칼럼, "선산에서 대학설립 좌절, 선산발전은 침체의 늪으로"

이순락기자 0 19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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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頭 이순락, 본지 발행인 ~




1994년 선산 정착 시작, 신림종합건설() 이사 발령

 

지금부터 대략 30여년 쯤 전이다. 필자가 처음 선산에서 첫 걸음을 내딛었을 때는 1993년 봄 무렵이었다. 대구에서의 생활을 청산하다시피하고 새로운 직장 신림종합건설()에 이사(등기)로 발령받아 가족들 모두 선산으로 이주, 정착했던 것이 지난 1994년 이때쯤 이었다.

 

당시 신림종합건설은 우리나라의 1군 건설업체(1년간 건설수주액 1천억 원 이상 업체. 당시엔 10개사 정도로 추산)였다. 그런 회사에 비교적 거액의 지원을 받고 특채된 것이었다. 그 배경은 여러 가지가 있었지만 고교 동기이자 절친인 필자의 친구가 적극 권유했던 것이다. 당시 필자는 대구에서 대학겸임교수와 건실한 중소기업(자동차부품 수출업체)에 몸담았다가 가슴쓰린 생지옥 같은 끔찍한 고통을 감내하던 중이었던 터라 , 사람이 죽으라는 법은 없는 모양이구나.’하고 하나님께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필자에게 부여된 회사의 대우는 파격적이라 할 정도였다. 당시 일반 대학교수 급료보다 더 좋은 조건이었기 때문이다.

 

선산 뒷골에 '선주전문대학 설립'하라는 특명

 

당시 필자에게 주어진 임무(특명)는 첫째, 선산 뒷골에 전문대학(선주전문대학) 설립, 둘째, 신림종합건설 최종두 회장님의 국회의원 당선이었다. 결과적으로는 전문대학 설립의 꿈도 날라 갔고, 국회의원 꿈도 경쟁상대인 속칭 킹메이커라는 허주 김윤환 대통령비서실장 출신과 싸움이라 가히 계란으로 바위치기나 다름없을 정도였다. 당시 선거구역은 구미시 전역은 물론 군위지역 전체를 포함했었다.

 

대학설립에 대하여 선산사람들에게 혼신의 힘으로 알렸지만 당시 허주의 민주자유당(민자당) 당원이 압도적으로 차지하는 선산사람들의 극심한 반대에 부딪혀 끝내 이루지 못한 꿈이 되고야 말았던 것이다. 그들은 택도 없는 소리 말아라. 선산뒷골에는 금오공대가 온다 카더라.”라는 어이없는 마타도어와 엉터리 소문을 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필자를 비롯한 최종두 회장을 지지하는 지역의 청년들과 몇몇 인사들이 아닙니다. 금오공대는 이미 거의동에 온다고 말뚝을 박고 설계 작업에 들어갔습니다.”고 해도 전혀 믿으려 하지 않았던 것이다.

 

당시 여당의 지역 홍보부장(작고한 황**)이라는 사람은 수십 명의 사람들 앞에서 필자를 향해 마치 인민재판식으로 최종두가 사기치고 있다. 그렇게 돈이 많으면 농협단위조합에 예금하라 케라. 그러면 믿겠다.”하는 등으로 모욕적인 언행으로 폄훼하는 등 조롱 일색으로 놀리듯이 고함질렀다. 그래서 필자는 대단히 죄송하지만, 우리 회장님이 농담삼아 하시는 말씀이 정주영 회장도 현금을 나만큼 갖고 있지 않을 거다고 하셨다. 아마 돈을 선산농협에 예금하는 순간 사전선거운동으로 국회의원 후보는 고사하고 김천에 붙잡혀 갈 것이다.”고 대응했으나 끝까지 거짓말이다. 사기친다는 등으로 무슨 왈패마냥 식식거리며 고함을 질렀고, 사람들은 황부장 말이 맞다고 맞장구를 치곤했었다. 그 뒤에 금오공대가 거의동에 건설을 시작하니 나오는 말인즉 선산뒷골에 경북대학교 대학원이 들어온다 카더라.”식으로 집요하게 끝까지 선주전문대학 설립을 방해, 좌절시켰던 것이다.

 

선산발전협의회 임시총회 참석, 가슴 아픈 추억이...

 

세월이 수 십 년 지난 며칠 전 선산발전협의회 임시총회(1.16.. 선산갈비마트)에 연락받고 참석하여 선산발전을 위해서 회장(황정학)과 모든 회원들이 일치단결하도록 위하여라는 건배를 주고받았던 터라, 새삼스럽게 아픈 기억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어 이렇게 소회를 어줍잖은 글로나마 더듬어 본 것이다. 만약 그 당시 선주전문대학이 선산 뒷골에 들어섰다면 지금의 선산은 과연 얼마나 발전되었겠는가. 허주가 설립한(?) 오상전문대학은 뒤에 경운대학으로 넘어가 오늘에 이르고 있기는 하다만.

 

필자는 신림종합건설 최종두 회장님이 국회의원으로 나섰다가 낙선, 결국 그 공룡 같은 회사가 부도가 났었고, 송정동에는 신림종합건설의 본사 건물이 있어 부근을 지나칠 때마다 눈물 맺히는 추억이 뇌리를 스치곤 한다. 필자는 나중에 계열재단인 도개 중고등학교 행정실장으로 2년여 몸담았던 일도 있었던 것이다. 도개고 유도부 창설의 산파역할을 했음에 상당한 자부심을 늘 가지고 있음은 물론이다.

 

만약 앞으로 선산에 어떤 획기적인 발전을 도모할 수 있는 뜻있는 사람 혹은 재력가가 나온다면 부디 도움은 못줘도 방해는 하지 말 것을 간곡히 부탁하지 않을 수 없다. 필자는 근 30여 년 선산에 살아도 아직도 타지 출신이라는 선을 긋고 대하는 대접(?)을 받는다. 외지인 취급하는 습성이랄까 이러한 의식구조가 바뀌어 질 수 있기를 간절히 바라는 바이다. 필자는 이곳에 이주, 정착한 이상 선산사람으로 스스로 자부심을 느끼며 선비의 고장을 지키는 부끄럼 없는 선산사람이고 싶은 것이다.

 

2024.1.19. 경북미디어뉴스 창간 11주년(1.15)

 

光頭 이순락 쓰다

이메일 : gbmnews@naver.com



기사등록 : 김영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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