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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5.18 광주민주화운동! 그 피맺힌 역사의 사적지 참배

이순락기자 0 17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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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光頭 이순락, 본지 발행인 ~


2019년 5월18일 구미 4개 시민단체 참배단 광주 동행 취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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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39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 안내 현수막이 5.18민중항쟁 추모탑을 함께 끌어안고 있다 ~  


~ 구미 참여연대, 민족문제연구소, 시민의 눈, 참교육 학부모회 30명 ~


2019년 5월 18일(토) 아침 8시 구미시청에서 예약된 45인승 대형 리무진 관광버스를 타고 5.18 광주민주화운동 39주년 행사 참배를 위해 우리 구미시민 30명(구미참여연대, 민족문제연구소, 시민의 눈, 참교육학부모회 회원들, 일반 시민 및 언론인 4명 등)이 부슬부슬 뿌리는 빗줄기를 마주하며 광주로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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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사를 주관한 구미참여연대 박찬문 집행위원장(가운데)과 대표 전대환목사(오른쪽) ~ 


버스 안에서 4개 시민단체 대표와 책임자 등을 비롯하여 동행한 우리 모두는 각자 자기소개를 하는 등으로 소통의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번 행사를 주관한 참여연대 박찬문 집행위원장이 준비한 “임을 위한 행진곡” 즉 ‘사랑도 명예도 이름도 남김없이 한평생 나가자던 뜨거운 맹세~~’ 등의 합창에 어떤 비장한 결의와 함께 오늘 느낄 수 있는 감격의 순간들을 예감케 하는데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비록 필자는 모르는 노래였지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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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미시민 참배단이 5.18민주묘역에서 참배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

 

박찬문 집행위원장은 그의 SNS(Face Book)에서 광주학살에 대한 결기를 이렇게 말했다. “광주학살 사진만 봐도 젊은 피가 끓었고, 울분을 참지 못하였고, 진실을 향해 싸웠다. 벌써 광주학살이 39년이 지났다. 광주학살의 진상규명과 책임자 처벌을 못한 결과 학살의 주범들은 여전히 잘살고 있고, 피해자들은 고통 속에 살고 있다. ... 이제 구미시민들이 함께 광주 망월동을 간다는 게 감격스럽다. 역사는 전진한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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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8민주묘역에서 필자 ~

 

이날 행사에 참여, 동행한 일행 중에서 필자가 평소에 소통하며 지내고 있었던 주요 관계자는 대략 이랬다. 참여연대 소속 중 전대환 대표(목사), 박찬문 집행위원장, 김병철 사무국장이다. 민족문제연구소는 전병택 구미지회장, 장기태 서훈추진위원장, 이미경 회원(민주당 도의원 후보~). 참교육학부모회원 중에서는 유일화게 알고 지낸 분은 은영지 회원이고 이 분은 성주 소성리에서 사드철거 운동을 하고 있는 중이며, 회장 김서영 선생은 평소 안면은 있었지만 가까이서 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인 것 같았다. 시민의 눈 회원들도 그런 것 같았다. 언론인으로서는 뉴스라이프 권맹식 발행인, 구미일번지 대표 최부건과 편집국장 백기봉 그리고 필자였다. 특이한 것은 고등학생 여자 한 사람과 그 오빠 고등학생이 동행한 점이다.  


국립5.18민주묘역 ‘제39주년 5.18 민주화운동 기념식’ ~ 그리고 참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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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사장 입구 도로 양옆엔 경호를 위한 경찰들이 물샐틈없이 도열, 인의 장막을 이루고 있었다 ~


3시간여 달려가 도착한 ‘5.18국립민주묘지’엔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는 광경이었다. 제39주년 5.18 민주화운동기념식 행사장 입구 도로 위에는 연두색 형광빛 경찰제복(우의)을 입은 경찰관들이 마치 인의 장벽을 만든 듯 경호를 하고 있었다. 아마 최고 VIP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와 국회 등 주요 인사들을 위한 경호 목적과 함께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의 광주 행사장 방문을 반대하는 시민단체들의 돌발사태에 대비한 일환으로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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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의 시민단체 회원들이 한국당 해체, 황교안 출입반대 시위를 하고 있다 ~


‘자유한국당 해체’, ‘황교안 참석 절대 반대’ 등의 손 팻말 식 현수막을 들고 농성을 하며 항의를 하는 광주시민단체들의 표정들이 결의와 분노에 꽉 찬 모습들을 보아서도 경찰들이 저렇게 만반의 준비태세를 유지할 필요가 있어 보였다. 뒤에 매스컴의 보도를 통해 알게 되었지만 극우 보수주의자들 일부가 광주 금남로에서 ‘부산갈매기’라는 대중가요를 부르는 등으로 제삿날 행사에 재 뿌리기도 유만 부득이지 니나노 판을 벌여 참으로 너무나 지나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피의 범벅으로 얼룩졌던 학살 현장 사진이며, 5.18 자유공원에 옛날 모습 그대로 복원한 505보안부대, 금남로, 전일 빌딩 등을 보면서 더욱 그랬었다. 


우리 구미시민참배단, 어디서든 환대받고 고맙다는 인사 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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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구미시민 참배단 깃발과 참교육학부모회 깃발, 이 깃발이 선도적으로 일행을 이끌었고, 환영받은 자랑스런 깃발이다 ~ 


우리가 도착한 시각은 이미 기념식 행사(오전 10시)가 끝난 11시 20분경이라 어수선한 분위기였지만 미리 준비해 간 ‘구미시민참배단’ 및 ‘참교육학부모회’깃발을 앞장 세워 다니면서 많은 사람들로부터 반가움과 경북 구미에서 왔다는 것이 놀랍다는 표정이고 또한 관심과 환영을 많이 받았다. 이러한 분위기는 광주에 머무를 동안 내내 그런 선의의 환영과 광주 시민들이며 시민단체 등의 환대를 받았기 때문이다.


5.18 민주묘역, 민중항쟁 추모탑, 무장항쟁군상, 유영봉안소 등 참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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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구미시민 참배단이 5.18 묘역에서 참배하고 있다 ~

 

5.18 민주묘역엔 1980년 5월 29일, 즉 5월 희생자 126기가 안장되어 있다고 했다. 그것도 수많은 희생자 중의 126기라는 것이다. 그 뒤 이한열, 박선영, 박태영 등을 비롯하여 2016년 백남기 농민 등이 안장되어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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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구미시민 참배단이 구묘역(망월동 묘역)에서 참배, 묵념을 하고 있다 ~

 

멀리서도 보는 이로 하여금 압도케 하는 5.18민중항쟁 추모탑은 높이 40m의 웅장한 석조탑으로 되어 있었고, 불의에 항거하는 시민군을 형상화한 무장항쟁군상은 짙은 상아색으로 발길을 머물게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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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유영 봉안소(봉안당) 내부 ~


또한 ‘유영봉안소’(추모관)은 이미 고인이 된 5.18민주유공자의 영정을 즐비하게 모시고 있었으며, 이 날은 기념식 행사일이라서 그랬을 터이지만 문재인 대통령을 비롯한 문희상 국회의장 등 각급 주요 인사들의 추념 조화가 무수히 도열하고 있었다. 보이는 사진들의 모습들이 거의가 20대 청년들의 모습처럼 보이는 터라 숙연한 마음이 더욱 컸었다. 더구나 묘역에서 보았던 흰옷 입은 할머니가 통곡을 하며 손자 같은 모습의 묘비에 박힌 아들의 사진을 껴안는 모습은 처연하여 눈시울을 젖게 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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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8 당시 어린 아들을 잃은 어머니가 아들을 그리며 통곡으로 오열하고 있어 눈시울을 뜨겁게 했다 ~


국립5.18민주묘역은 지난 1993년 5월에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 특별담화에서 묘역 조성을 발표하였고, 2002년에 국립묘지 승격, 2006년 1월에 국립5.18민주묘지로 개칭되었다고 안내서에서 설명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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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택시(5.18 민주항쟁 관련 영화)'의 주인공 김사복씨와 동행 취재, 외신기자로 5.18민주항쟁을 외부에 알린 유명한 독일인 기자 위르겐 힌츠패트 추모묘비 ~


특히 눈에 띄는 독일인 위르겐 힌츠패트 기자의 묘석이었다. 그는 5.18광주민주화 항쟁에 대한 영화 ‘택시’의 주인공 운전기사 김사복씨와 함께 너무도 잘 알려진 인물로서, 외국에 가장 먼저 타전하여 사건을 상세히 알려준 광주 민주화운동의 가장 중요한 주역 중의 한 사람인 것이다.


5.18민주화운동 발생경위와 경과 내용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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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만행을 보라, 진압봉을 휘두르며 시민을 폭행하는 무자비한 모습과 포승줄로 굴비엮듯 시민들을 묶어 끌고 있다 ~


1980년 5월 17일 비상계엄 전국 확대에 따라 취해진 계엄군의 광주, 전남지역 무력진압과 관련, 1980년 5월 18일부터 27일까지 10일간 광주시민과 학생들이 부당한 국가권력에 항거한 반독재 민주화 운동이 일어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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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8 민주 묘역에 있는 무장항쟁군상 부조물, 당시의 처절한 몸부림을 역력히 느끼게 한다 ~

 

민주화운동 경과 내용을 보면 1980년 5월 17일 비상계엄 전국 확대, 5.18 전남대학교 정문에서 학생들과 계엄군의 충돌, 5.20 차량시위를 계기로 광주시민들의 적극적인 저항, 5.21 계엄군의 금남로 시민을 향한 집단 발포, 광주를 외부로부터 고립, 5.27 계엄군의 광주시민 진압작전, 1995년 12. 21 5.18민주화운동 등에 관한 특별법 제정, 2002년 1월 26일 광주민주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률 제정 등으로 되어 있다(국립5.18민주묘지 안내책자 인용).


북한 침투설은 전두환이 보안사의 공작 통해 날조한 것
5.18은 광주시민이 일으킨 것이 아니라 몇몇 군 장성들이 일으킨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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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8 민주묘역에서 필자(왼쪽)와 뉴스라이프 권맹식 대표(오른쪽), 권대표는 사진 촬영으로 크게 도왔다 ~

 

최근에 언론에서 보도하고 있는 내용을 보면 전두환을 비롯한 일부 장성들이 사태를 조작하여 무력으로 무고한 광주시민을 학살하였음을 증언하고 있다. 즉 5.18민주화운동 당시 전두환의 광주방문을 증언한 주한미군 정보요원 출신 김용장씨의 지난 5월 13일 국회의원회관 회견 당시 기자회견에서 다음과 같이 증언했다.


“북한군 침투설도 전두환이 허위 날조한 것이며, 유언비어 유포 역시 일부 군대 특수요원들이 시민으로 위장해 벌인 공작일 것이다. 시민을 폭도로 만들고, 강경진압의 빌미를 만들기 위해 보안사가 고도의 공작을 벌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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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8민주묘역에 있는 추념문을 뒤로하고 기념 촬영, 근데 이 무거운 날에 미소가 어찌 좀...ㅎ ㅎ ~

 

또한 현재 캐나다 브리티시 콜롬비아 대학(UBC)에서 한국학을 강의하고 있는 도널드 베이커 교수(미국인)는  지난 2011.6.14.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전두환은 종신형 받고 지금도 감옥에 있어야 할 사람”이라고 하면서 “전두환은 전직 대통령으로 예우되어서는 안되고 범죄자로 취급받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는 과거 국제사면위원회 미국 지부장을 역임했으며, 5.18 당시 한국에서 체재하고 있었던 사람으로 한국어도 유창하게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의 증언에 따르면 ‘1980년 5월의 반란은 광주시민이 일으킨 것이 아니라 몇몇 군 장성이 일으킨 것이다. 광주시민은 평화적인 시위였지 반란이 아니었다. 그러나 이 평화로운 시위대들이 자국민을 상대로 치명적 폭력을 저지른 군대와 마주쳤을 때 그 시민들은 정당방위로 저항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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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 자유공원, 옛 상무대 및 505보안부대 모델건물, 시설 견학
~ 가혹한 고문, 억지 자백조서, 군사재판, 투옥, 처형 현장 재현 ~


우리들 참배단 일행은 광주의 민족문제연구소 관계자의 도움과 가이드에 따라 외지에서 온 사람들이 쉽게 찾을 수 없는 투어코스로 ‘5.18민주공원’으로 안내되었다. 주변엔 아파트들이 즐비하게 있었지만 시민들을 설득, 넓은 부지를 확보하여 옛 모습 그대로 군부대의 외양을 손색없이 잘 갖춘 모습인 상무대와 505보안부대를 재현한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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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18민주항쟁 당시를 설명하고 있는 5.18자유공원 관계 안내자가 당시의 군법정 모습을 그대로 재현한 곳에서 설명하고 있다 ~


상무대는 계엄사령부 전남북계엄분소로서 계엄군 주요 지휘관 회의, 시민수습위원들과 협상도 하였고, 붙잡혀 온 시민들이 영창에서 가혹한 고문과 구타를 당했으며, 군사법정 건물에서 부당한 재판을 받았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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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군대 내에 잡혀온 시민들을 군인이 군기잡는 고문으로 원산폭격 실시 중, 근데 그 옆에 박찬문 위원장이 헉~


고문에 견디는 장사가 과연 얼마나 있을까. 억지자백으로 자백조서(?)를 만들고 날인하여 군사법정에 넘기면 이에 따라 합법적인(?) 재판을 하여 죽이거나 가혹한 옥살이를 시켰던 것이다. 더욱이나 민주화운동을 억압하는 실질적인 지휘본부가 바로 505 보안부대였다고 한다. 옛날 필자가 대학 다녔을 때 ‘육사 위에 보안사, 보안사 위에 여사’라는 유행어(?)가 있었던 때도 있긴 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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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두환의 친필 휘호가 새겨진 제7공수여단 부대 내 기념 비석이 시민들에 의해 뽑혀 꺼꾸로 박혀 있다 ~


한 가지 인상적인 조형물(비석)은 다름 아닌 특전사 제7공수여단 영내에 있던 전두환의 휘호(?)로 바위에 새긴 ‘선진조국의 선봉’ ‘대통령 전두환’이라는 기념석이 거꾸로 처박혀 있고, 사람들이 기념으로 한 번씩 밟기도 하고 침을 뱉는 등 수모를 당하고 있는 저주의 기념물이 있었다. 솔직히 광주 방문 동안은 내내 ‘경상도 사람’이란 것이 부끄럽고 죄스러웠던 것은 바로 전두환 이라는 사람이 우리 경상도 출신(경남 합천, 대구공고)이라는 점 때문이었다면 결코 틀린 말은 아닐 것이다.


시민군의 함성이 아직도 귀에 쟁쟁한 금남로, 전남 도청 그리고 전일빌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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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 여기가 금남로이구나, 감회도 새로운데 기념행사로 시민들이 한데 어울려 참가하고 있다 ~


우리의 다음 행선지는 오늘의 참배코스로서 피날래를 장식할 광주 도심인 서울의 명동거리(대구 동성로)와 같은 금남로와 전남도청 그리고 전일빌딩 견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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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남로에 게시된 처절한 절규같은 그들의 현수막이 포효하는 듯했다 ~


금남로에 들어서는 순간 5.18 행사로 도시 전체가 쩌렁쩌렁 울려나갈 정도의 고성으로 무슨 노동운동가들이 부르는 듯한 박진감 넘친 음률이었지만 필자가 느끼고, 귀에 들린 그들 음악은 무슨 통곡을 하는 피울음처럼 느껴졌다. 금남로는 5.18민주화운동 기간 중 시민들이 계엄군에 맞서 연일 격렬하게 저항했던 상징적인 거리였기에 더욱 그런 느낌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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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금남로에서 5.18 기념 행사 중인 시민들 ~​

 

5월 18일 최초 학생들의 연좌시위가 있었고, 5.18민주화운동 이후 진실을 밝히려는 투쟁들이 이 거리에서 이루어졌다고 하며, 지금도 민주화를 위한 시민집회가 계속 열리고 있는 거리로서, 필자 같은 방문객에겐 추억을 더듬고 겸허한 자세를 가지게 하는 역사적 거리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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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뒤에 보이는 건물이 옛 전남도청이다, 역사적 현장이 그대로 보존 중인 것 같았다 ~


옛 전남도청은  계엄군이 주둔했던 장소이기도 했으며, 시민들의 저항과 분노의 대상이었던 장소이다. 민족문제연구소 광주지회 안내자와 자료에 의하면 5월 21일 집단발포로 시민들의 저항이 거세지자 계엄군은 시외로 퇴각했고, 이 후 시민들이 희생자들을 임시로 안치하며 시민수습대책위 및 항쟁지도부가 활동하는 곳이었다고 했다. 5월 27일 새벽 계엄군의 무력진압에도 시민군이 끝까지 저항했던 최후의 항쟁지이자 성전적(聖戰的) 전투지였던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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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뒤에 보이는 건물이 바로 전일빌딩이다. 최근에 헬기 조준사격의 흔적이 있어 그날의 참상을 말해주고 있는데... ~

 

전일빌딩은 우리가 본 광주항쟁의 마지막 성지나 다름없는 곳이 바로 전일빌딩이었다. 항간에 계엄군의 헬기 조준 공중사격의 목표물로 잘 알려진 곳으로서 계엄군의 폭력진압이 탄흔의 자국으로 생생하게 증거 되고 있는 사건 현장이었는데, 견학 시에는 건물의 보수문제인지 철골 거푸집으로 가림막 텐트가 쳐져 있었다.


마지막 전일빌딩을 멀찍한 거리에서 보면서 광주 민족문제연구소(민문연) 측  주요 관계자들로부터 귀한 막걸리 선물까지 받는 등 환대를 해준 깊은 정의에 감사를 드렸다. 과거 구미에서 민문연 주최 왕산 허위선생 추모제에 참여했던 낯설지 않은 분도 만나게 되어 더욱 반가웠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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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광주 금남로에서 구미시민 참배단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
 

돌아오는 길에 고속도로 휴게소에서 다소 늦은 저녁 식사를 했으며, 구미시청 광장에 도착한 시각이 밤 10시경이었다. 오늘의 행사에 참석한 모두가 5.18광주민주화운동이라는 곳을 방문, 직접적으로 체감하듯 했음에 주최한 분들에게 한결같이  감사의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필자의 언론인이라는 개인적인 입장으로서는 특히 사진 촬영에 수고를 아끼지 않은 뉴스라이프 권맹식 대표, 편집국장까지 동행한 구미일번지 최부건 대표 등에게 크게 감사를 드린다. 물론 함께해주신 많은 분들께도 당연히 감사를 드림은 물론이다. 
 



기사등록 : 이순락기자 / gbmnews@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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