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기훈칼럼]"구미시는 소통과 화합으로 가는 청사진과 로드 맵을 하루 빨리 제시하라!"
글쓴이 : 김기훈 박사, 경북대평화문제연구소 연구위원, 구미회 부회장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환경을 가진 나라가 어디냐? 물으면 대부분 스위스를 손꼽는다. 스위스 하면 대다수 생각하는 것은 스위스 은행, 시계, 알프스, 젖소와 목초지, 알프스를 이용한 겨울스포츠, 즐거운 요들송, 자연적 환경을 이용한 관광 등등 이런 것들을 사람들은 머리에 떠올릴 것이다.
스위스의 과거 역사는 그렇게 낭만적이지 않고 오히려 처절한 배고픔만 있었던 도시국가였다. 스위스 역사에서 잊을 수 없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돈을 받고 전쟁터로 나가는 “스위스 용병”이 있었다.
오늘날의 부강하고 살기 좋은 스위스를 만드는데 도화선이 된 것이 “스위스 용병”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스위스 용병은 13세기말부터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의 공격을 막아내는데 성공하면서 유럽전역에 그 명성을 널리 알리기 시작했다.
전 국토가 산악지대다 보니 가족들이 먹고 살기 위해 스위스의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용병으로 돈을 받고 전쟁터로 팔려나갔다. 중세 스위스는 용병을 산업화하였고, 그들은 외국에 고용되어 크고 작은 전쟁에 참가하였다. 스위스 용병은 라이슬로이퍼(Reisläufer)라는 고유명사를 가질 정도로 중세시대 전쟁에서는 유명하였다.
1490년대는 중세 전 유럽의 용병 시장을 스위스 용병들이 장악하게 된다. 그래서 프랑스 대혁명 당시 루이 16세의 베르사이유 궁을 지킨 근위대는 스위스 용병들이었다. 대혁명으로 도망칠 수도 있었지만, 계약관계를 맺은 스위스 용병들은 도망가지 않고, 프랑스 혁명군과 치열한 전투를 하며 물러서지 않았다.
그들은 비록 용감하게 싸웠지만 결국 786명 전원이 전사하고 만다. 프랑스 대혁명이후부터 스위스 부모들은 자식을 전쟁터로 내보내는 것을 자제하면서 시계와 칼을 만들고, 스위스 용병들이 맺은 계약처럼 고객의 돈을 목숨을 걸고 지켜주는 은행업과 금융업을 발전시킨다. 현재 로마 바티칸 교황청을 지키는 근위병들도 스위스 용병들이다.
스위스 루체른에 있는 스위스 용병들을 잊지 않기 위해 창과 칼에 찔려 굶어 죽은 스위스 용병을 기억하고, 기념하기 위해 칼과 창에 찔린 용병을 사자로 표현하여 죽어가는 사자의 동상인 “빈사의 사자상(瀕死의 獅子像, Löwendenkmal)”을 만들었다.
스위스의 아버지들은 아들이 태어나 5세가 되면, 아버지는 아들을 데리고 “빈사의 사자상”을 찾는 것이 관례화 되어 있다고 한다. 오늘날의 스위스가 있기까지 역사적으로 그 밑바탕에는 스위스 용병들이 있었기 때문에 스위스 국민들은 빈사의 사자상을 찾지 않을까 필자는 생각한다.
그래서 스위스 국민들은 스위스 용병들을 자랑스러워하고 존경의 대상으로 생각한다. 스위스 국민들 어느 누구도 빈사의 사자상을 보고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하지 않는다. 유럽 어느 국가를 가더라도 유명한 광장과 공원에는 그 나라 역사를 대표하거나 자랑할 만한 위대한 사람들의 동상과 조각들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최근 구미시 왕산광장과 왕산루를 산동광장과 산동루 명칭 변경을 둘러싸고 구미 시민사회에 갈등과 대립이 극명하게 들어났었다. 최초 발단의 원인은 왕산광장에 세워지는 왕산 가문의 독립운동가 14명의 동상이 밤이 되면 “무섭다”는 주민들의 의견이 있다는 이유로 관할 지역 시의원이 왕산광장과 왕산루 건립에 문제제기를 하면서 주민공청회를 거쳐 산동광장과 산동루로 명칭이 변경되었다.
따라서 왕산 가문에서 배출한 14분의 독립운동가 동상이 현재 갈 곳을 잃었다. 유럽이나 선진국 같으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밀란 쿤데라(Milan Kundera)의 소설 제목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을 우리 스스로 만들어 내고 있는 실정이다.
임은동의 왕산기념관은 젊은 청년들도 가기 힘든 산 중턱에 자리 잡고 있으며, 왕산 가문의 독립운동가 14명의 동상이 세워지기에는 장소가 협소하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왕산광장 명칭 변경을 제처 두고라도 14명의 동상을 공장 창고에 방치한다는 것은 나라와 조국을 위해 삶을 받친 왕산가문의 독립운동가 분들을 우리 구미시가 두 번 죽이는 일이다.
선진국이 잘 먹고 잘 사는 것만이 선진국이 아니다. 그 나라의 역사와 문화가 유구하게 살아 있으면서 경제가 성장해야지만 선진국이 되는 것이다. 역사와 문화가 없고 돈과 경제만을 신봉한다면 우리는 “천민자본주의(賤民資本主義)”의 그늘에서 계속 살아 갈 것이다.
만약 유럽이나 미국에 왕산 허위 선생 가문이 있었다면 그들은 그 도시를 “왕산시”로 명명했을 것이며, 도시 중심에 적어도 10만평 규모의 공원과 박물관을 세워 전세계 관광객을 유치하고 선전했을 것이다. 그들은 국가와 조국을 위해 헌신한 위대한 사람들이 그들의 역사에 있다는 것을 오히려 자랑스러워 한다. 그래서 그들은 광장을 만들고 동상을 세우는 것이 일반적이고 보편적이다.
미국의 1달러 짜리 화폐의 조지 워싱턴은 미국의 초대 대통령이지만, 그 이전에 미국 독립의 아버지이다. 이런 것을 봤을 때 유럽과 미국은 우리보다 훨씬 문명 국가라고 할 수 있다. 역사와 문화에 대한 우리 한국의 화폐 중 독립운동가가 있는 화폐가 과연 있는가? 왜 우리는 이러한 조국 독립과 나라를 구하기 위해 삶을 헌신한 왕산 허위 선생의 가문의 훌륭한 분들이 자기 고향 땅 구미에서조차 홀대 받고 있는 이유를 필자는 알 수가 없다.
프랑스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프랑스를 점령한 독일군에 저항한 레지스탕스(résistance)를 프랑스 국민의 영웅으로 칭송하고 기념한다. 프랑스 레지스탕스의 대표적 인물인 드골(De Gaulle) 장군을 프랑스 국민들은 대통령으로 선출하였고, 프랑스 파리에 드골 광장을 만들고 드골 대통령의 동상을 세워 그들의 나라를 지킨 사람들을 현재에도 영원히 기억하고 있다. 프랑스 파리의 어느 누구도 광장과 동상을 무서워하는 사람은 없다.
왕산 허위 선생의 사촌 동생 허필(許苾) 선생은 왕산 허위 선생과 함께 의병 운동을 하다가 허위 선생이 일제에 체포 되어 사형되면서 형제와 가족들을 데리고 1915년 만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 자금을 조달하였다. 1922년 국내에서 군자금을 모금하다가 일제에 체포되어 옥고를 치른다. 이러한 허필 선생의 독립운동을 국가보훈처는 2010년 서훈을 추서하였다.
그러나 서훈을 추서했음에도 10년 동안 국가보훈처에 잠자고 있다가 올해 2019년 6월에 대구에 살고 있는 허필 선생의 손자 허창수씨에게 전달되었다. 이렇게 전달된 원인도 동북항일연군 제3로군 군장 겸 참모장을 역임한 허형식(許亨植)장군을 연구하고 서훈을 추진하다가 허형식 장군의 아버지 허필 선생의 공훈 훈장이 후손에게 전달되지 않고 보훈처에 10년 동안 보관한 것을 알게 되었다고 한다.
독립유공자 서훈이 10년 동안 후손을 찾아 주지 않고 잠자고 있었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구미시 왕산 기념관에서도 허필 선생이 서훈을 받았다는 것을 알고 있으면서 후손을 찾을 생각을 하지 않았다. 왕산 기념관은 왕산뿐만 아니라 허위 선생의 가족들을 연구하고 기념하기 위해서 만들어 놓은 곳이다.
10년 동안 허필 선생의 공훈 훈장이 후손에게 전달되지 않고 잠자고 있었다는 것은 국가보훈처와 왕산기념관의 본래의 직무를 방기, 태만하고 있었다는 것으로 밖에는 볼 수 없다. 한마디로 왕산기념관은 왕산 허위 가문에 대한 연구에 대한 애착과 성의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해야 할 것이다. 허필 선생의 손자 허창수씨를 찾은 사람은 허형식 장군을 연구하던 필자의 지인이었다.
구미시는 왕산광장과 왕산루 명칭 변경으로 엄청난 곤욕을 치렀다. 따라서 구미시는 새로운 방향과 차원의 왕산기념공원에 대한 해법과 청사진을 구미시민들 앞에 제시하는 것이 이 문제를 하루 속히 해결하는 길이라고 생각한다. 임은동의 왕산기념관 주위는 구미시민 어느 누구가 보아도 왕산 공원으로 조성하기에는 부적합하다는 것을 누구나 알 수 있다.
따라서 왕산광장과 왕산루에 명칭 변경으로 발생한 시민사회의 갈등과 대립을 빠른 시간 내에 수습하기 위해서는 구미시가 새로운 청사진과 로드 맵을 시민들에게 제시하는 것이 갈등과 대립을 조기에 수습할 수 있다고 필자는 본다. 구미시가 이러한 노력을 할 때 비로소 구미시가 시민들과 소통·대화를 하려는 모습으로 비추어 질 것이라고 필자는 생각한다.
2018년 장세용 시장이 당선되면서 구미에 LG화학 구미형 일자리와 구미공단 스마트산업 단지로 선정되면서 경제적으로 어려운 구미가 새로운 재도약의 발판을 마련해 가는 과정에 놓여 있다. 그러나 왕산광장과 왕산루 명칭 변경, 구미공단 50주년 행사에서 박정희 전대통령의 영상물이 빠진 것들이 구미시가 열심히 공을 들이고 노력해서 한 일들을 한순간에 묻어 버리는 분위기를 가져 왔다.
구미시가 이러한 딜레마에서 하루 속히 벗어나고, 소모적 논쟁과 갈등을 봉합하는 차원, 그리고 구미가 앞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구미시가 새로운 방향의 청사진과 로드맵을 시민들 앞에 빠른 시간 내에 제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필자는 생각한다.
그리고 구미공단 50주년 행사에서 박정희 전대통령 영상물이 빠진 것이 담당 공무원들의 단순한 실수라면 이 참에 구미시 공무원들에 대한 인사와 인적쇄신이 불가피하다는 평가가 구미시 곳곳에서 터져 나오고 있는 실정이며, 현재 구미시민들은 구미시장에게 더 많은 소통과 대화를 하기를 바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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