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 > 사설칼럼 > 김도형칼럼
김도형칼럼

《세계금궁스포츠협회 오늘의 말》영험한 금오산을 찾는 까닭은

이순락기자 0 3283

78cd9b3aa430845d9315b58ed7d7e7a9_1627859365_4621.jpg 

~세계금궁스포츠협회장, 한국유통신문 발행인~


골짜기마다 기암괴석으로 빼어난 경관을 선사하는 금오산은 남성적인 기상이 넘쳐 소금강이라고 불리기도 했다.

또한 고려 충신 야은 길재 선생이 인생 말년에 금오산에 은거하며 인재를 양성했다. 길재 선생은 스스로를 '금오산인'이라고 불렀으며 금오산 채미정 입구 바윗돌에  회고가로 인생의 무상함을 노래했다.

 

      오백년 도읍지를 필마로 돌아드니
      산천은 의구한데 인걸은 간 데 없네
      어즈버, 태평연월이 꿈이런가 하노라

 

조선인재의 반은 영남에 있고 영남 인재의 반은 선산에 있다는 말이 허투로 나온 말은 아니다. 금오산 아래서 학문을 수양한 길재의 제자들이 영산의 정기를 한 몸에 받아 능력을 만방에 알렸다.

 

인재의 산실인 금오산의  기운을 없애기 위해 임진왜란 때 명나라 사신은 선산 뒤쪽 금오산의 맥을 끊었으며 숯불에 달군 쇠못을 박아 산의 정기를 죽였다고 전해지기도 한다.

 

옛적이나 지금이나 금오산의 수려함은 그대로며 소원을 빌기 위해 민족의 영산을 찾는 이들의 행렬이 끊이지 않는다.

 

자연의 보고로 도심지에서 멀지 않은 곳 우뚝 쏫아 있는 금오산이 있어 구미인들은 언제나 든든하다.


78cd9b3aa430845d9315b58ed7d7e7a9_1627859419_1553.jpg

금오지 제방 올레길에는 금오산을 바라보며 소원을 비는 사람들이 매달아 놓은 리본이 하나둘씩 늘어가고 있다.


 

-세계금궁스포츠협회 어록, 영험한 금오산을 찾는 까닭은-

 

2021. 8.2. 06:00






기사등록 : 김영숙기자
# [경북미디어뉴스]의 모든 기사와 사진은 저작권법에 따라 무단전재시 저작권료를 청구할 수 있습니다.

0 Comments

Facebook Twitter GooglePlus KakaoStory KakaoTalk NaverBa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