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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금궁스포츠협회 오늘의 말》왕산 허위 선생 생가터 일대를 도시재생하라

이순락기자 0 3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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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금궁스포츠협회장, KTN한국유통신문 발행인~



2021년 10월 21일 구미시 임은동 왕산허위기념관 옆 묘소에서는 순국 113주기 추모식이 거행됐다.




왕산 허위 선생은 구미시 임은동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김해이고 호는 왕산이다. 한말 일제의 침략에 대항하여 의병을 일으킨 의병장이다.




을미년(1985년) 일제가 궁궐을 침입하여 황후를 살해한 을미사변을 당하자, 1896년 의병을 일으켜 김천 장날을 기하여 봉기하였다. 서울 공격을 위해 의병을 이끌고 충청도 진천에 이르렀을 때 고종의 밀서를 받고 자진 해산하였다.




1899년 조정의 부름을 받은 후 여러 벼슬을 거쳤으나 일제의 압력으로 사임, 구금되기도 하였다.




1905년 일제가 조선을 대표하는 을사조약이 체결되자, 1907년 경기도 일대에서 의병을 일으켜 수 차례 일본군과 접전하였다.




1908년 서울에 진격하여 동대문 밖 30리 지점에서 일본군과 대치, 격전을 벌였으나 패하여 퇴군하였다. 다시 서울 공격을 준비하던 중 일본 헌병대의 습격을 받고 경기도 영평에서 체포되었다.




그해 10월 "나라와 백성의 욕됨이 이에 이르렀으니 죽지 않고 어이하랴/아버지 장례도 치르지 못하고/나라의 주권도 회복하지 못했으니/충성도 못하고 효도도 못한 몸이니 죽은들 어이 눈을 감으랴"라는 유서를 남기고 순국하였다.




그 일가와 후손들이 만주로 건너가 항일운동에 몸바쳐 숱한 독립운동가가 배출되었다.




대구달성공원에 순국기념비가 있고, 서울 청량리에서 동대문까지의 길을 선생을 기념하여 '왕산로'라고 부른다. 왕산 허위는 1962년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이 추서되었다.




구미시 임은동 생가터는 현재 왕산 허위 선생기념공원으로 조성되어 있다.




골목 사이로 협소한 까닭에 접근성도 부족할 뿐더러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도시재생사업의 일환으로 일대를 명소로 변화시킬 수 있다.




왕산 허위 선생이 태어난 곳을 기점으로 독립운동가의 발자취를 알리는 것이 중요하며 선택과 집중이 필요한 사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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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미시임은동에 위치한 왕산허위기념관, 경사도가 가파른 곳에 지어진 만큼 왕산전망대  조성 및 모노레일 등을 적극 활용하여 사람들이 찾기 좋은 명소로 거듭나야 한다. 


-세계금궁스포츠협회 어록, 왕산 허위 선생 생가터 일대를 도시재생하라-




2021. 10.22. 06:00



기사등록 : 김영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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