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후감, 박범신 作 ‘나마스테’, 공지영 作 ‘고등어’
~ 소설 '나마스테' 박범신 作(왼쪽), '고등어' 공지영 作(오른쪽) ~
위 소설 2권을 약 열흘 동안 틈틈이 다 읽었다
사회복지사 사이버 강의 수강시간이 1주당 7개 과목ㆍ14시간씩에서 4개 과목ㆍ8시간으로 축소되니 시간적 여유가 있어 훌훌 나르는 기분이 아니겠는가.
그래서 사무실 옆 우리밀 베이커리 카페에서 ‘나마스테’를 그리고 ‘고등어’를 대출, 정말 재미있게 읽었다
박범신 작가의 ‘나마스테(안녕하세요. 사랑합니다라는 뜻, 네팔어)’는
네팔에서 한국에 온 젊은 청년이 자기의 사랑하는 애인을 찾으러 왔다가 결국 누나뻘 되는 한국인 여자와 살게 되었다. 그 뒤 열악한 외국인들의 노동조건과 처우를 개선하는 열혈 노동운동가로 변신하여 살면서 분신으로 최후를 맞는 내용 이었다.
물론 그의 사랑하는 누나이자 부인인 한국 여자도 그의 분신한 몸을 껴안고 함께 삶을 불꽃처럼 마감하는 가슴 아픈 내용 이었다.
나 자신이 젊은 친구의 권유로 현재 외국인 노동자(불법체류)와 관련된 일(경북농촌일손돕기지원센터)에 관계하고 있어 소설을 읽는 동안 참으로 많은 것을 생각케 했다.
아무튼 외국인 노동자들에 대한 처우가 과거와는 전혀 다르게 엄청나게 개선되고 좋아졌다.
그러나 아직도 저들에 대한 노예 부리듯 하는 많은 수의 우리 국민들 의식수준부터 개선해야할 분야가 너무도 많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네팔 그리고 히말라야의 아름다운 설산의 풍경에 대한 묘사는 그림 속의 신화를 산책하듯 하는 즐거움도 가지게 했다.
소설 ‘나마스테’가 외국인 근로자들에 대한 고용이나 인식 등에 대한 반면교사로 삼아야 한다는 강한 교훈을 인상 깊게 제시하고 있었다. 더구나 국경을 초월한 사랑의 세레나데는 역시 너무나 감동적이었다.
공지영 작 ‘고등어’
80년대 후반 90년대에 이르는 젊은 대학생 청년들의 민주화 운동과 (그들 청년들의 졸업 후~)그에 따른 젊은이들의 암울한 사회분위기며, 그에 편승?한 청춘들의 애증 같은 로맨틱한 이야기를 그린 것 이었다.
공지영 작가는 어쩌면 자신이 대학졸업 후 당시 운동권 출신 대학생들이 그랬던 것처럼 중소기업 현장 근로자로 위장 취업했던 경험도 소설의 테마구성에 일정부분 토대가 됐을 것이리라.
그러나 소설 내용의 핵심 부분엔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독자로서 또한 유사한 상황을 겪어본 나 자신의 경험 등을 대입시켰을 때, 잔인할 정도로 지나치게 한 남자 주인공(명우)을 무참하게 그의 도덕성을 무너뜨리는 듯이 보였다. 물론 스토리에서 분위기는 모두가 너무도 당연한 듯이 인위적이고 의도적인 그림은 결코 아니라고 해도 그랬다. 즉 그가 간여(사랑)했던 여자 3인을 그의 방(오피스텔)에 동시에 집합 시키듯 하는 소설의 구성은 아무리 극적인 요소가 중요하다고 해도 이건 너무 지나치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게 했다.
나 자신 참회의 고해성사를 하듯 하는 과거의 경험을 말하자면 고등어 소설과 거의 비견될 수 있는 드라마틱한 역사가 있다.
군에서 의가사 제대 후 복학을 늦춘 상태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려고 했었다. 당시는 소위 1차 세계 오일쇼크로 (1973 년 전후) 아르바이트를 못 구해 결국 그 잘난 주먹 하나 믿고 부산의 뒷골목에서 꼬마 하나를 데리고 구두닦이 생활을 9개월 가까이 했었던 일이 있었다. 가슴 아픈 기억이지만 사실 군 입대의 경우도 가지 않아도 될(부선망4대독자) 처지임에도 자원입대 했었고, 의가사 제대를 했었다. 그래서 일찍 마친 군 복무기간이라 ‘돈 벌기’를 하여 등록금도 마련코자 했던 일환에서 취직자리를 못 구한 결과의 일자리였다. 이런 이야기는 아직까지도 자식에게도 밝히지 않은 가슴에 묻어둔 사실이긴 하다. 그런 세월을 보내고 또 다시 모 화학공장(신발제조)에 취업, 가장 힘든 일도 마다하지 않고 다녔던 일도 있었다.
결국 이것은 아니다 싶어 ‘이럴 바에야 공부하여 빨리 출세하고, 나중에 복학하면 되는 것 아니냐’해서, 두 분 형님께 상의, 형님들의 도움으로 복학을 미루고 경남 언양 산사에 가서 고등고시 준비를 했던 일이 있었다. 그 역시 길지 않은 시간이었고, 이도 저도 안 된다면 복학(사실은 재입학이었다)하여 대학 졸업이나 하자는 판단으로 학교에 가게 되었다.
복학 후 공부를 악착같이 하였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성적을 거두어도 1학년 때 못 거둔 성적 관계로 장학금 한 번 못 탄 최우등생 중의 하나였었다. 입학 후 1학년 2학 기간 내내 운동(권투)에 빠져 1년간 획득 성적이 다른 사람 1학기 학점에도 못 미치는 성적 불량학생 이었기 때문이었다. 또한 소위 연좌제 아닌 연좌제에 걸려 공무원 되겠다는 꿈을 접고, 졸업반 4학년 때부터 대구 작은 형님 사업에 합류ㆍ수출역군으로 종사하게 됐다.
그 당시 나는 사실 여자관계가 얽혀 있었다.
대구에 있는 여자 친구와 서울서 휴학한 여자 친구(무역박람회에서 아르바이트 하는 서울 최고 명문대 출신)가 내가 자취하는 한 방에서 그들 두 여자와 밤을 보낸 일도 있었다. 나는 그야말로 희대의 카사노바가 되고 말았다. 그런 경험이 있음에 비추어 공지영 작가의 고등어에서 주인공(영민)이 세 여자를 자기 방에서 교우토록 한 것은 아무리 소설이지만 그 비약이 너무 지나치고, 남자란 존재의 자존심을 너무 무참하고 야비하게 짓밟은 것만 같다. 그런 장면은 결국 나에게 아픈 젊었을 때의 기억을 소환하지 않을 수 없게 했었다.
시대가 아프게 한 당시의 젊은 청년에 대한 비뚤어진 모욕은 아닌지. 고등어의 스토리처럼 나 자신도 결국 그 당시의 여자 친구들과는 모두 헤어졌다. 대구 여친은 혼인 날짜까지 잡았으나 그쪽에서 그의 언니의 반대로 무산됐고, 서울 친구는 그 가정을 책임져야 할 능력이 내겐 전혀 자신이 없어 결혼에 이르지 못했다. 지금의 와이프와는 중매로 선을 보고 결혼, 아들 딸 시집 장가 다 보내고 노후를 따뜻한 봄날의 양지처럼 지내고 있는 중에 있다.
아무튼 모처럼 읽게 된 소설 2권이었고, 모두가 시대의 흐름을 느끼게 하는 좋은 책이라 이 가을에 독서의 기쁨을 가질 수 있게 했다. 써보지 않은 독후감도 기꺼이 쓰고, 부끄럼도 모르는 만용인지 치매현상인지 나의 과거사 일부도 더듬어 보았다.
光頭 이순락 쓰다
2020.11.16
기사등록 : 이순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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