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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철 에세이 "살아 있어서 좋아요!"

김영숙기자 0 28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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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김진철 목사, 충남 서천군 화양면 오순교회 담임 ~  


"살아 있어서 좋아요! ? 당신은 바다 위에 뿌리를 내린 기적의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장대비가 쏟아지는 주일이었지만 올 사람들은 다 교회 오셨습니다. 비 오는 날 노인들의 출입은 어렵고 조심스럽습니다. 우산을 들고 지팡이를 짚어야 하는 일이 번거로울 뿐 아니라. 손과 다리에 힘이 없어서 자칫 넘어지기라도 한다면 이건 보통 문제가 아닙니다. 그런 어려움을 무릅쓰고 교회에 나오신 것입니다

 나는 뭉클한 마음에 살아 있어서 좋아요라는 말을 해드렸습니다. 조남주 작가의 매화나무 아래라는 단편을 내 기억을 바탕으로 각색 한 말입니다. 그 작품은 80세 언저리 자매의 이야기입니다. 첫째 할머니의 이름은 금주인데 치매가 있고 요양병원에 계십니다. 둘째 할머니는 암으로 투병하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 이름은 은주입니다. 화자인 막내는 동주라는 이름을 가져야 하는데 아들을 바라는 부모님은 말녀라고 이름을 지어주셨습니다. 평생 아픔이었습니다. 큰 언니는 막내를 감싸면서 동주라고 불러주지만 둘째 언니는 애정이 담긴 놀림으로 싸웠던 이름이었습니다. 늦은 나이지만 갖고 싶었던 이름 동주로 개명을 했습니다. 화자가 언니가 있는 요양병원을 찾으면서 이런저런 지난 이야기들을 기억하고 반추하면서 익숙했던 우리의 삶을 다른 시각으로 보게 해줍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자녀들도 찾아오지 않는 언니에게 뜻밖에 얼굴이 희고 키가 훤칠하게 큰 손자가 자주 찾아와 힘든 수발을 즐겁게 해주었습니다. 화자가 그 손주에게 물었습니다. “아무것도 할 수 없고 귀찮기만 한 할머니가 뭐가 좋아?” 그때 손주는 할머니가 살아 있어서 좋아요라고 대답했습니다. 이건 분명히 책을 읽은 기억에다 내 생각을 투사한 것이어서 작품과 일치하는 것은 아닙니다. 폭우 속에 위험을 무릅쓰고 두려움을 이기고 교회에 나온 그들이 정말 고마워 들려준 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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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그 말과 더불어 바다 위에 삶의 뿌리 내리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밀려왔다 밀려가는 물결 위에, 때로는 광풍으로 태풍으로 거센 물결이 온통 바다를 뒤집어 놓는데 그 위에 삶의 뿌리 내리는 일은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그 불가능한 일을 해낸 기적의 사람입니다. 일제 강점기, 한국전쟁, 보릿고개, IMF 그리고 코로나에 이르기까지 세월의 파도를 이겨내고 삶의 뿌리를 내리고 자녀들을 잘 키워낸 기적의 사람들입니다.

 시간이 흘러 몸과 마음이 뜻대로 움직이지 않고 요양원으로 가시더라도 그래서 내가 자식들의 짐만 되는 쓸모없는 인간이라고 생각될 때, 교인도 친척도 자녀들도 오지 않아 쓸쓸한 마음이 들 때 이 말을 꼭 기억하십시오. 당신의 피붙이 중에 누군가는 할머니가 살아 있어서 좋아요.’ 라고 한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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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등록 : 김영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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