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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에세이)

정호영 "초겨울 수다사를 찾다"

김영숙기자 0 14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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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65일 술을 마시다가 술을 끊은지 100일 쯤 되었다. 그런데 오늘은 술을 한잔 마시고 싶다.

오늘은 선산 무을에 있는 수다사라는 작은 절집에 다녀왔다. 가을이 되면 절집 마당에 가득히 은행잎이 수북히 쌓이는 곳인데 겨울이 깊으니 마당엔 은행잎도 단풍도 인적조차 뜸한 곳이 되어 있었다. 원래의 행선지는 그곳이 아니 였는데 어쩌다 보니 그곳으로 발길이 흘렀다.

사람의 발길도 뜸한 산사를 호젓이 걷다가 왔다. 외로운 것은 나에겐 평생의 업이니 익숙하고 담담하게 감당해 낸다. 용렬하고 협량하다 할지 모르지만올 곧은 것은 앉을 자리와 어울릴 장소와 함께 할 사람을 바르게 가리는 일이다. 세계를 포용하고 인류애를 말 할 수 있으되 그것은 보편적 가치와 견고한 도덕적 기준 안에서의 일이다. 그리고 그 다음에 비로소 용서와 화해와 전인적 사랑 운운 할 수 있는 것이다. 어울릴 자리가 아니면 더러는 외로울 지언정 돌아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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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가을부터 한동안 마음속에 있던 어떤 일을 도모하려 했는데 접어야 할 것 같다. 평생 나를 옭가 맨 모자란 자식놈에 대한 책임과 의무가, 그 외면 할 수 없는 현실이 아직도 나에겐 그런 작은 시도조차 용납되지 않는 듯 하다.

하늘을 날고 싶으나 자유라는 날개가 없으니 단 하루 밤이라도 혼자서 저 밤 바다에 나아갈 수 없고, 노 저어 저 섬으로 갈 자유가 없으니, 그래서 겨우내 밤마다 절망하고 또 절망한다.


이번 생, 내 소풍 길은 꿈만 한보따리 등짝에 지고 터덜터덜 걸어가는 여정이다. 그래도 뒷춤에 술 몇병 차고 가니 갈만한 소풍길이다.

오늘 한잔 해 보자. 술 한잔에 이 지독한 절망과 외로움을 이겨보자.


<편집자 註 : 본문은 SNS(페북)에서 글쓴이 정호영 님의 승인하에 올린 글입니다. 귀한 글 보도하고 읽을 수 있게 해주심에 감사드립니다>





기사등록 : 김영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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