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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에세이)

류시화 "시인으로 산다는 것은 "

이순락기자 0 12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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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직업 없이 시인으로, 전업 작가로 살아가는 가장 큰 장점은 자유롭다는 것이다. 또한 가장 많이 받는 오해는 늘 자유로울 것이라는 생각이다. 이때의 자유는 시간, 일, 도덕관념으로부터의 자유까지 포함한다(이렇게 말하고 나니 내심 뿌듯하기까지 하다. 인간을 구속하는 그 모든 굴레로부터의 해방이라니).

가령 열이면 아홉은 내가 언제든 전화를 받을 수 있는 상태라고 여긴다. 자정 넘어 전화를 걸어도(예술가는 야행성이니까), 새벽에 해도(자주 밤을 새울 테니까), 낮 시간 아무 때나 해도(직장이 없어 시간에 구애받지 않을 테니까) 내가 당연히 전화를 받을 것이라 믿는다.

그래서 다른 사람에게라면(가령 직장인이나 교사나 성직자나 비행기 조종사) 자제했을 전화나 문자 메시지를 나에게는 시도때도 없이 한다. 그러니 정작 시간에 구애받지 않는 것은 내가 아니라 그들이다. 다시 말해 작가로 사는 내 자유를 누리는 것은 내가 아니라 그들인 것이다. 마치 자유의 의미가 아무 때나 침범할 수 있는 것인 양.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어린아이 같아진다. 내가 전화를 받지 않고 메시지에 즉시 답하지 않으면 쉽게 감정이 상하고 불쾌해한다. 자신인 걸 알면서 일부러 무시하거나 외면한다고 오해하는 것이다. 어느 스님은 심하게 화를 냈다. 나를 좋아한다는 어떤 여성은 내가 자신을 차단시켰다고 비난했다. 어느 발행인은 내가 자신의 출판사를 싫어한다고 불평했다(내 글 쓰는 방식을 누차 설명했는데도). 전화받지 않을 자유조차 없는 시인의 삶이라니!

가령 글을 쓰거나 구상하는 시간이면 나는 전화기를 꺼 놓거나 아예 다른 방에 갖다놓는다. 그것이 며칠 동안, 심지어 두세 달 동안 이어질 때도 있다. 당신은 글을 써 봤는가? 번역은? 말도 하지 마라. 그 어떤 일 못지 않은 중노동이다. 더구나 완벽주의자인 경우는 쪽잠을 자야 하고 책상에 엎드려 자야 하고 하루 종일 문장 하나가 머리에 맴돈다. 자유롭기 때문에, 불필요한 일들에 정신을 소진하지 않아도 되니까, 오히려 시간 구분 없이 자신이 좋아하는 일에 매달리게 된다. 그리고 그것이 자유가 주는 가장 큰 기쁨이다.

당신이 작가가 아니고 혹시 전업 명상 수행자라면 당신에게는 하루 종일 명상을 할 자유가 주어진다. 하루 종일 명상을 하지 않을 자유가 아니라. 그것은 자유가 아니라 도피이다. 당신이 자유인이든 혹은 조금 자유롭든, 다른 사람들이 당신의 자유를 누리게 해서는 안 된다. 누구든 언제나 침범할 수 있는 자유는 자유가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당신은 자신의 자유를 소중하게 여기지 않는 것이다. 얕게 파종되어 언제든 파헤쳐지는 씨앗은 싹을 틔울 수 없다.

자유롭기 위해서는 경계선 긋기가 필요하다. 그것이 시간이든 공간이든 관계이든, 자신의 자유로운 영역을 지키는 건강한 경계선 긋기가. 그때 당신은 자신이 원하는 삶에 전적으로 몰입할 수 있다. 자유는 불필요한 일들과 만남(스님, 나를 좋아하는 여성, 출판사 발행인은 예외)으로부터 금을 긋고 자신이 원하는 삶을 사는 것에 다름 아니므로.

"왜 내 전화를 안 받아요? 열 번도 넘게 했는데. 문자 메시지를 확인도 안 하고?"
"바닷속에 들어가 있었어요. 해저 100미터에서 헤엄치고 있었거든요."
"(미심쩍은 표정으로) 그럼 물 밖으로 나왔을 때 전화를 했어야죠."
"숨 좀 쉬려고 인도에 갔었어요. 태양에 몸에 묻은 소금기도 말려야 하고."
"그럼 도대체 언제 통화가 가능한 거예요? 혹시 나를 일부러 피하는 (갑자기 확신으로 바뀌며) 거죠? 인도에서 돌아와서는 왜 또 전화를 안 받아요?"
"또다시 바닷속에 들어갔거든요. 심해 깊은 곳으로. 그곳에서 자유롭게 유영을 하느라..."

*

심해 밖으로 나와 보니 저의 새 책 『신이 쉼표를 넣은 곳에 마침표를 찍지 말라』가 교보문고 온라인 서점의 <오늘의 책>에 선정되었다고 문자 메시지가 와 있네요. 여러분의 응원과 관심 덕분입니다.

www.kyobobook.co.kr

  art credit_Olaf Hajek

사진 설명이 없습니다.


(*편집자 註 : 본문은 페이스북 '최부건 님'의 글에서 양해를 구하고 퍼온 글입니다)




기사등록 : 이순락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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