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철 에세이 "수선화"
~ 필자, 김진철 목사, 충남 서천 화양면 오순교회 ~
나를 잊지 말아요.
아침부터 흐려 있더니 오후에 비가 내립니다. 비를 맞은 수선화가 고개를 숙이고 있습니다. 그 모습이 참 슬퍼 보입니다.
무슨 이유인지 최근에 주위에 욥기를 읽는 다는 목사님들이 많아진 것도 같고 까닭 없이 화가 나고 눈물이 난다는 사람들도 보게 됩니다. 무슨 일이나 대충대충 하고 사는 나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무언가가 그들에게는 있는가 봅니다.
그게 부럽습니다. 수선화를 볼 때마다 생각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게 벌써 6년 전입니다. 경상도에서 나고 자라고 공부하고 목회하던 내가 그곳을 떠나 충남의 낯선 동네에 이삿짐을 푼 다음날 마을공동수도(지금은 상수도로 바뀌었다.) 물탱크 청소한다는 방송이 나왔습니다. 나는 인사도 할 겸 나갔습니다.
~ 수선화, 김진철 ~
물탱크에 들어가서 물걸레 들고 왔다 갔다 하다가 식사자리에서 교회에 새로 온 목사라고 인사하고 막걸리 흔들어 한잔씩 부어드렸습니다. 그는 술을 끊었지만 목사님이 주시니 딱 한잔만 받겠다며 받았습니다. 그리고 두어 달 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췌장암이라고 했습니다.
나는 그런 것도 모르고 목사가 술을 권했구나 싶어 얼굴이 화끈거렸습니다. 이웃교회 목사님은 그가 나를 좋아했다면서 하관예배 축도를 부탁했습니다. 나는 거창하게 축도하고, 가족들로부터 고맙다는 인사와 봉투까지 받았습니다. 그러고는 잊어버렸습니다.
그러나 손이 부지런한 권사님이 그의 무덤가에 꽃밭을 만들었습니다. 해마다 봄에 수선화가 피었고 지나가는 나의 발걸음을 붙잡고 “나를 잊지 말라고”고 말을 걸어옵니다. 그 날 공동수도 청소하고 이야기하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동네주민이 되었던 것입니다. 농담 좋아하고 이야기하기를 좋아하던 그의 공이 참으로 컸습니다.
오는 토요일이 아버님 추도일인데, 목사라는 핑계로 가족보다 다른 사람들을 먼저 챙겼던 일이 나이드니 후회가 됩니다. 부끄럽지만 올해도 토요일에다 코로나 때문이라고 참 핑계되기가 좋습니다.
고난과 부활의 계절, 주님은 봄꽃으로 우리에게 다가와 속삭입니다. 나를 기억하고, 아픈 이들을 기억하라고~비 맞은 수선화가 날이 개이면 더욱 생기가 넘치듯이 지금의 고난을 소망을 가지고 견디면 더 굳건한 소망으로 부활할 것입니다.
주여, 이 봄 모든 슬픔과 아픔을 간직하고 기억하는 사람들에게 평화를 주소서.
김진철 쓰다
기사등록 : 김영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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