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격리 그리고 해제
~ 필자, 충남서천군 화양면 오순교회 담임목사 김진철 ~
‘빗줄기 하나도 멈추지 못하게 하는 무력한 우리의 기도’라는 말이 가슴을 아프게 찌른다. 하나님의 임재와 부재(침묵)사이에서 ‘언제까지입니까?’하고 묻는 것도 폭우 속에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 사실 앞에 힘을 잃어버렸다.
예수시대나 그 이전의 시대의 사람들은 병에 걸리면 귀신들렸거나 하나님의 벌을 받았다고 인식했다 병으로 인한 고통보다 사회적인 편견과 낙인으로 더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성경의 기록에도 발병이나 오랜 병으로 말미암아 가족으로부터도 외면을 받거나 공동체에서 쫓겨나고 무덤을 거처삼아 살기도 했다. 사람이 가까이 오면 스스로 부정한 자라고 외치기도 했단다. 불결한 자, 부정한 자, 하나님의 징벌을 받은 죄인으로 규정되어 버림을 받았다. 예수는 그들에게 가서 손을 내밀었다. 의학이나 과학이 진보하기 전에 있었던 비이성적인 일이라고 넘길 것이 아니다. 의학과 과학이 발전한 지금도 과학과 의학을 맹신하는 사람들에게 과학이 주술이 되어 그런 전 근대적인 짓거리들을 과학과 이성과 공동체의 보호라는 명분으로 스스럼없이 한다. 그들이 만드는 언어가 격리 봉쇄 혐오 구별을 가장한 차별이다.
한 달여 전 토요일 저녁에 목이 잠기고 코가 막혔다. 전에 같으면 당연히 감기라고 여기고 감기약을 먹고 쉬었을 것이다. 지금은 코로나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 무렵에 내가 접촉한 일이 있었던 사람 중에 코로나에 확진되었다는 소식도 들었다. 그리고 가장 최근에 만난 집사님 한분이 전화를 주셨다. 코로나 양성이 나와서 이번 주일 교회에 못 나온다고 하셨다. 그러니 나도 합리적인 의심이 되었다. 그래서 장로님에게 연락을 했다. “검사를 해 보아야겠지만, 코로나가 의심이 됩니다. 최근에 접촉한 사람 중에 코로나 확진자가 나왔습니다. 그래서 주일 예배에 못 나가니 주보 순서에 따라 예배인도해주시고, 설교는 성경만 읽고 생략하시던지 장로님이 준비해서 하시던지 해주세요.”하고 말씀을 드렸다. 주일 오후에 자가 키트로 검사를 해보니 희미하기는 해도(물론 이것은 순전히 내 생각이다. 다른 사람이 보았으면 두줄이 확실하다고 했을 것이다) 두 줄이었다. 그것을 들고 일요일에도 검사를 하는 전담병원으로 갔다. 병원 출입문에“코로나 검사자는 출입을 금한다”라고 붙어 있었다. 그것을 읽고 있으니 문을 열고 간호사가 나와서 어떻게 오셨느냐고 물었다. 검사키트를 보여주면서 검사받으러왔다고 했다. 바깥에 있는 의자에 앉으라고 하면서 몇 가지 질문을 했다. 양성이 나올 경우 처방을 원하면 증상에 대해서 기록하라고 했다. 기록을 하고 있으니 다른 간호사가 나와서 코로나 검사를 했다. 20분 정도 소요된다고 했다. 그늘도 없는 의자에 앉아 있었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왔다. 그들도 검사를 했다. 또 한 무리의 사람들이 왔다. 그들도 검사를 했다. 이번에는 나이 드신 분들이 오셨는데 힘이 들었는지 오자마자 숨을 거칠게 내쉬며 내 곁에 털썩 앉았다. 이야기를 나누어보니 어느 교회에서 입원환자를 문병오신 분들이었다. 그래서 여기 앉으면 코로나 걸릴지 모르니 저쪽으로 가시라고 했다. 화들짝 놀라서 이동하는 그 분들을 보고 있으니 갑자기 묘한 거리감이 들었다. 마치 딴 세계로 잠시 옮겨지는 느낌이랄까. 지역에 코로나 감염환자가 많이 생겨서 가족 2인에 한해서만 문병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들은 잠시 이야기를 주고받더니 서둘러 돌아갔다. 검사비를 계산하고 처방전을 받는 것도 동반자가 없는 경우 병원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고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난달에서 계산을 하고 처방전을 받고 설명을 들었다. 지금까지 다른 사람들에게 수없이 반복했던 이야기를 그들은 녹음기처럼 되풀이했다. 몸이 아픈 것보다 환자를 대하는 이 방식에 화가 났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냥 알 수 없는 짜증이 났다고 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내가 코로나 확진자가 되어 격리되어야 한다는 사실 때문에. 생각해보면 그 동안 안 걸린 것이 오히려 감사할 일이고 또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이해하면서도 뜨거운 햇볕에 아무렇게나 놓인 의자에 긴 기다림에 했던 설명들을 반복하는 것에 짜증이 났다. 약국에도 코로나 확진이 안 된 동행자가 약국에 들어가서 처방을 받으라고 했다. 동행자가 없었던 나는 약국 바깥에 서서 다른 사람들이 문을 열 때 약사가 보라고 처방전을 요란하게 흔들었다. 다행이 눈치가 빠른 약사가 알아차리고 나와서 친절하게 처방을 해주었다.
그 짧은 시간에 나는 사회의 모든 공간으로부터 출입이 금지되었다. 갈 수 있는 곳은 병원과 약국, 그리고 내가 일주일 기거할 집. 그러니까 정치적인 이유가 아니라 코로나 때문에 가택연금을 당하는 것이다.
차를 몰고 돌아오면서 거리를 천천히 쳐다보았다. 편하게 활보하며 걷던 거리, 거리낌 없이 문을 열고 드나들던 가게, 주문하고 기다리고 먹고 마시고 이야기하던 공간들을 차 안에서 바라보는 거리감이 들었다. 일주일 혹은 열흘인데. 하면서도 그런 생각이 들었다.
다음 날 문자가 날아왔다,
귀하는 코로나 19 검사 확진으로 감염병예방법 제 41조 및 43조등에 따라 격리됨을 통지합니다. 충청남도 서천군보건소장 이름으로 왔다. 격리기간동안 필요한 것이 있어서 사러 가는데 휴대전화가 울렸다. 보건소에서 온 전화였다. 인사와 상태가 어떤지를 물어보고 출입을 하면 안된다는 이야기를 했다. 나는 순간 뜨끔했다. 내가 차를 몰고 가는 것을 알고 있나? 그러면서 씩씩하게 대답을 했다. 출입을 안할 것이니 걱정말라고.
나는 잠시 나를 세상으로부터 격리시켜 다른 세상으로 집어넣기로 했다. 격리되어서 집에 있는 것보다 다른 세계로 나를 집어 넣어보기로 했다. 어느 시대 어느 사회로 들어 가볼까, 까뮈의 페스트의 오랑시로 잠시 이동해볼까. 신앙의 행위도 의학도 지식도 무력화 시키는 중세 페스트의 죽음의 춤앞에서 슬픔과 우울과 두려움과 상처를 덮기 위해 서로의 이야기를 나누며 이 고통의 시간 뒤에 희망이 올 것을 기다리던 복카치오의 데카메론의 사람들속에 들어가 나도 한 사람의 이야기꾼으로 살아볼까, 아니 우주로 가볼까, 망명자가 되어 미디안으로 간 모세를 만나 인터뷰를 해볼까. 나를 격리 시킨 사회에서 나와 내가 가 보고 싶은 곳을 선택하려고 하니 그 자체로 신이 나고 즐거웠다.
까뮈는 페스트에서 도시가 봉쇄되니 사람들이 연락할 길이 막혀서 낭패를 당하는 것을 묘사했다. 그래도 가능한 것이 전보였다. 아, 얼마나 다행인가! 우리는 수많은 연락수단을 가지고 있는 시대에 살고 있으니 말이다. 안부를 묻는 것으로부터 먼저 걸린 사람들의 슬기로운 조언들, 희망의 말들로 수다를 떠는 것도 다 할 수 있으니 말이다.
까뮈는 봉쇄속의 생활을 ‘귀양생활’이라고 불렀다. 초기에는 사람들이 곧 좋아질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미래에 대한 전망을 했다. 물론 대부분의 사람들은 미래보다 과거를 추억하고 이야기를 나누었다. 미래를 전망하던 사람들도 곧 상처만 받고 과거이야기를 하기 시작했다. 코로나 초기에 그렇게 쏟아지던 반성과 전망의 논의들이 시간이 길어지고 우리의 예측을 무력화시키고 지긋지긋하게 괴롭히는 코로나에 굴복하고 일상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말을 늘어놓지 않는가!
그렇게 노닥거리는 동안 시간은 흘러서 격리 해제가 되었다. 토요일 그리고 주일 아침에 두 번의 검사가 음성이 나왔다. 기쁜 마음으로 주일 예배를 인도했다. 나의 기쁨과 달리 교인들은 불안해 보였다. 그것이 나를 잠시 망설이게 했다. 나의 몸은 코로나를 떠나보냈지만 나의 몸에는 코로나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것은 두 주일이 지나서야 해소되었다.
목사인 나에게는 목소리가 중요했다. 나의 목소리가 온전히 돌아오는 것도 중요하고, 듣는 이들의 마음도 안심하게 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나도 모르게 사람을 만나거나 모임에 가거나 예배시간 전에 혼자 목소리를 내보는 후유증(?)이 생겼다. 한 달이 지난 지금도 혼자 기침을 해보고 목소리가 맑은지 아닌지 테스트하고 있는 나를 보면서 ‘고통은 짧고 후유증은 길다’ 라고 격리해제의 결론을 내렸다. 허망한 것은 코로나에 대해 알아가면서 우리의 문명 전환에 대한 논의도 힘을 잃고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는 어떤 재난과 재앙으로도 돌이킬 수 없는 파국으로 가는 길뿐인가?
오늘 누군가의 기도가 마음을 찌른다.
“빗줄기 하나도 멈추지 못하게 하는 무력한 우리의 기도”
기사등록 : 김영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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