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진철 에세이, '정성스럽게 먹고 싶은 음식을 만난 기쁨'
~ 글쓴이, 김진철 충남 서천군 화양면 오순교회 담임목사~
추수가 시작되기 전에 가을 심방을 마쳤다. 가정수가 많지 않은데다 형편에 따라 토요일과 주일에도 했더니 일주일도 안 걸려 끝났다. 그리고 지난여름에 코로나와 이런 저런 사정으로 미루었던 휴가 겸해서 1박 2일 시간을 내었다.
첫날은 아들과 며느리를 만나 점심을 먹었다. 보름 앞당긴 생일점심이었다. 아내와 나, 둘이서는 가기 힘든 젊은이들이 주로 가는 식당이라서 좋았다. 물어가면서 배워가면서 즐겁게 먹었다. 거기에다 커피와 디저트까지 대접을 받았다. 그 사이 날씨는 맑았다가 비가 오다를 반복했다. 다양한 음식들을 구경하는 것도 즐겁고, 그 많은 것 중에서 자기 취향에 맞추어 자유롭게 선택하는 것이 좋았다.
나는 커피를 마시러 가면 선택을 하고 싶어도 뭐가 뭔지를 몰라서 망설임도 없이 씩씩하게 아메리카노를 선택했었다. 묻는 것도 어색하고 자존심도 상하고 해서 그냥 그렇게 했다. 그래도 그 날은 아들과 며느리 앞이라 생각을 하고 또 해서 요커트를 주문했다. 다양한 것 중에 자기가 원하는 것을 선택하는 그 모습이 부러웠다. 나는 선과 악, 정의와 불의, 흑과 백의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던, 아니 선택을 강요당하던 시대를 살았다. 물론 질문은 원천 봉쇄되었다. 그래서 선택에 어떤 강박이 있다. 여러 가지 변수를 내세우며 합리적인 선택을 위해 끝없이 토론하는 사람들을 만나면 그냥 짜증이 났다. 그것은 음식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단품을 선호하고, 복잡한 것은 피하고 아무리 맛있는 것이라도 줄서는 것은 질색이었다.
자기가 먹을 것을 고르고 물어보고 주장하고 줄을 서서 이야기하며 기다리는 젊은이들의 모습이 그래서 나는 참 좋았다. 아마도 그들은 사회의 다른 분야에서도 그런 개성강한 자기주장을 하고 선택할 것이라 여겨져서 더 좋았다. 때로는 강박적인 선택을 원하는 사람들과 충돌을 일으키겠지만.
다음 날 우리는 찾고 찾아서 게국지를 먹으러 갔다. 그 곳에 간 목적은 오직 그 식당에서 그 음식을 먹을 요량으로 갔다. 서천에 산다고 하면 게국지에 대해 물어보는 사람들이 있어서 먹어는 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갔다. 오전 11시가 피크인데 10시 30분에 문을 연다고 해서 열심히 달려가서 10시 30분에 도착을 했다. 그런데 이 찜찜함은 뭐지? 식당앞에 크게 오늘은 휴업한다고 붙어 있었다. 그러니까 연휴가 지나고 화요일에 휴업을 한 것이었다. 우리는 허탈한 마음으로 별별 불만과 푸념을 늘어놓았다. 그러다가 ‘내 인생에 무슨 좋은 일이 있겠어.’하는 자조적인 말까지 나왔다. 게국지 한 그릇에 인생전반을 성찰했다. 갑자기 추워진 날씨에 바람까지 부는 썰렁한 광장을 걷다가 우리는 다음 목적지를 향해 갔다. 차의 흐름이 뜸한 길을 가다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국도를 따라 가다가 만난 뜻밖의 맛집들이 생각이 났다. 그래서 우리는 허기가 져서 들어간 허름한 옛 식당에서 뜻밖의 맛난 음식을 먹었던 기억들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이어갔다.
그렇게 길을 가다가 아내의 눈에 한식뷔페 집이 들어왔고, 오매불망 게국지를 맛있게 먹으려고 아침을 굶은 허기진 배의 부르짖음에 못이겨 그 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우리는 정성스럽게 만든 음식은 정성스럽게 먹어야 한다는 교훈을 만들면서 정말 맛있게 먹었다. 달걀 프라이도 하고 라면도 끓여서 먹었다. 우리는 게국지는 잊어버리고 즐거운 마음으로 식사를 하고, 그래 여행은 이런 맛에 하는 거야. 하고 위로했다. 더구나 8천원이 안되는 돈으로. 수요일 예배를 드리고 다시 1박 2일 길을 떠날텐데 어떤 우연한 좋은 일이 있을까. 기대가 된다. 정성스럽게 만든 음식을 정말 정성스럽게 먹어주는 손님이 있어서 빛난다. 이번 여행에서 얻은 나의 생각이다. 목사가 정성스럽게 준비한 설교를 교인들이 정성스럽게 들어주어야 빛이난다는 말을 하고 싶은 것이다.
기사등록 : 김영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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