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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에세이)

김진철 에세이, "심방과 쇼핑"

김영숙기자 0 1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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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김진철 목사, 충남 서천군 화양면 오순교회 담임 ~


장애인주일이 지났습니다. 김천에서 목회할 때 중증장애 아이가 생각나서 지인에게 근황이 어떤지 물었습니다. 요한이는 몇 년 전에 하늘나라로 갔다고 했습니다. 나는 요한이 어머니에게 전화했습니다, 특유의 밝고 에너지 넘치는 목소리는 여전했습니다. 안타 끼운 마음과 함께 고생하셨다고 했더니 아니라고 조금 더 잘해주지 못한 것이 마음에 걸린다고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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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주일날 예배를 마치고 오후에 경북대학병원에 입원해 있던 요한이를 만나러 갔습니다. 너무 자주 입원해서 미안하다고 오지 말고 기도만 해달라는 요한이 어머니의 부탁을 무시하고 갔습니다. 요한이는 지체 장애의 정도가 굉장히 심해서 얼마 살지 못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어머니의 간절한 기도와 사랑이 의사가 말한 연수를 훌쩍 넘겼습니다, 요한이를 돌보기 위해 요한이가 다니던 중증 지체 장애 반의 교사로 일을 했습니다. 자꾸 벋치는 것을 감당할 수가 없어서 병원에 입원했습니다. 고통스러워하며 뻗치는 요한이를 안고 있는 그 어머니의 모습을 보면서 나는 뻣뻣하게 굳은 예수의 시신을 안고 있는 마리아가 연상되었습니다.


여러 가지 검사를 했는데 원인을 찾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약물 주사를 통해서 안정을 취하고 있지만 약을 끊으면 다시 뻗치기 시작해서 퇴원을 못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그때 우리가 해 줄 수 있는 것은 기도밖에 없습니다. 요한이를 보고 있어서 일상의 소소한 즐거움을 누리지 못해서 힘들지 않냐고 물었더니 다른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요한이만 보고 있으니 마음이 편하다고 웃었습니다. 그렇게 요한이는 17년 동안 어머니의 사랑을 받고 살다가 하나님의 품으로 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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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이 병문안하고 오는 길에 같이 간 여신도들이 가까운데 백화점이 있으니 1시간만 구경하다가 가자고 했습니다. 그 당시 김천에는 백화점이 없었습니다. 주일이라 그런지 주차하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먼저 내려서 쇼핑을 하라고 하고 남신도 대표로 간 집사님과 나는 주차를 하려고 기다렸습니다. 주차하는 데만 30분가량 걸렸습니다. 옥상에 있는 야외주차장까지 올라갔습니다. 거기서도 기다렸다가 자리가 나서 주차를 했습니다.


차 안에서 기다리려니 무료했습니다. 찾아가는 것이 어떠냐고 물었더니 경험이 많은 집사님이 우리가 찾아가면 마음들이 조급해지고 화를 당할 수 있으니 안 가는 것이 도와주는 것이라 해서 그냥 있기로 했습니다. 조금 있으니 답답해서 그냥 우리 둘이 백화점 구경을 하기로 했습니다, 우연이라도 만나면 그것도 좋고....정말 많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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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참 늙어가는 남자 둘이 양복을 입고, 백화점 안을 구경하는 것처럼 어색한 일도 없었습니다. 그래서 조금 다니다가 그냥 나왔습니다. “한 시간 구경이라는 것은 빈말이지 믿은 우리가 어리석지하면서, 둘이서 여자들에 대한 온갖 불평을 다 하고 나니 어디에 있느냐고 연락이 왔습니다. 구경을 더 할 텐데 아이들이 있는 집에서 자꾸 전화가 와서 마음이 급하다고. 그래서 일찍 나왔다는 것입니다. 한 시간이 넘었는데 일직이라니 하면서 우리는 잔뜩 볼이 부어 있었는데, 다행히 먹을 것을 사 와서 그것을 하나씩 먹고 화를 다 풀었습니다. 남자는 어떻게 보면 지극히 단순한가 봅니다. 그런데 여신도들을 보니 별 물건을 사지도 않았습니다. 그리고 예배를 드린 것보다 더 행복해 보이고 말이 많아졌습니다. 쇼핑이 그렇게 재미있나 봅니다. 가끔 여신도들이 장거리 심방 갈 때 신나 하는 목적이 무엇인지 궁금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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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방이 온통 연두색입니다. 황사든 미세먼지든 오는 봄을 막을 수는 없습니다, 생명의 기운이 넘치는 색입니다. 요한이 어머니는 17년 봉사하던 어린이집을 그만두고 새로운 길을 찾기 위해 기도하며 준비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전화를 내려놓고 나는 지난 목회 동안 내가 하는 설교보다 더 아름답게 살았던 교인들 가운데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모든 이론은 회색이고, 영원한 것은 저 푸른 생명의 나무뿐이라네.” 이 오랜 경구를 오늘 나는 모든 유창한 설교보다 사랑하는 삶이 아름답다라고 바꾸어 읽는다. 생명의 봄은 하나님이 그리는 연두색 수채화입니다. 




기사등록 : 김영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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