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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철에세이 "가을의 기도"

김영숙기자 0 1001

가을의 기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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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 김진철 목사, 충남 서천군 화양면 오순교회 담임 ~     


서늘한 새벽공기처럼 첼로의 음이 폐부에 깊숙이 내려앉습니다. 가을입니다.

얼마 전 힘들고 긴 항암치료 후 모든 것이 눈에 뜨이게 좋아진 지인을 만났습니다. 이제 암의 흔적은 거의 사라졌지만 의사는 조혈모세포 이식을 당연한 절차인 것처럼 하자고 했습니다. 그는 이식을 위해 병원에 가는 날 새벽, 이식수술을 하지 않겠다고 결정을 했습니다. 그 중요한 결정의 시간까지 그는 많은 정보를 수집하고 살펴보고 고민하고 가족과 의논하고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 과정을 설명하는 그의 모습이 숭고해 보였습니다. 앞으로의 삶에 대해 낙관적이고 희망을 믿는 그는 이제 죽어도 여한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의 안내로 가산에 있는 가산수피아를

 걸었습니다. 핑크 물리를 찾아 많은 사람이 유쾌한 나들이를 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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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 날 나는 대기업에서 퇴직하고 서천으로 내려온 사람을 만났습니다. 그는 퇴직 후 이일 저일에 손을 대다가 가족과 잠시 떨어져 농촌에서 생활해보기를 하고자 집을 구했습니다. 2년 계약을 했습니다. 전망이 좋은 그의 집에서 예배를 드렸습니다. 많은 시간 숙고하고 결정을 했을 것입니다. 나는 그가 결정한 것을 존중하면서 다만 이 시간이 한때의 추억으로 남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삶의 의미와 보람, 그리고 기쁨을 발견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습니다. 그의 작업실에는 첼로가 있었습니다. 배우려고 가지고 왔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거실 벽에는 아내가 붙여놓은 우영우 드라마에 나온 것 같은 고래가 붙어 있었습니다. 아마도 남편의 결정을 응원하는 뜻이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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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나는 참 아름다운 이야기 하나를 들었습니다.

이태원 참사를 보고 정말 해보고 싶은 것을 하지 못하고 죽을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 힘들게 들어갔던 대학의 공부를 내려놓고 작곡을 하고 싶다고 말했는다는 여학생.

이 결정을 말했을 때 보일 부모님의 반응, 가까운 친인척 중에 이런 일을 하는 사람, 그러니까 조언해주고 도와주고 길잡이가 되어줄 사람도 없고, 먹고 사는 문제가 걸려 있는 불안, 잘할 수 있을까 하는 숱한 고민을 붙잡고 씨름하며 밤을 보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 일을 하겠다고 말한 모습을 제가 보지는 못헸지만 아름다웠을 것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저를 비롯한 대다수 부모는 대학을 졸업하고 적절한 곳에 취직하고 직장 생활하고 결혼하고 아이 낳고 승진하고...그렇게 자녀들이 살기를 바랄 것입니다. 그 길에서 벗어난 자녀를 만난 부모님들은 평탄한 길을 가지 못하고 고생하게 될 그 모습이 안타까워 평범한 길을 가기를 권유하지요.

우리는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자녀들에게 공부하라고 입시만 끝내면 얼마든지 자유를 누릴 수 있다고 채근했던 삶을 반성했습니다. 우리의 생명을 알 수 없으니 아이들과 더불어 가족여행을 하면서 좋은 추억을 만들고 지금의 행복을 누리는 것이 더 소중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이태원 참사를 보고 정말 해보고 싶은 일을 하겠다는 생각을 한 학생은 청소년 시절에 세월호의 아픔을 가진 세대입니다. 그 트라우마가 이번 결정에 작용했을 것입니다. 그 결정이 어떤 길과 결과를 가져올지 모르지만 나는 그 과정이 아름답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삶의 중요한 결정을 고독하게 한 사람들을 만난  시간이 감동이기도 하지만 마음 한편이 아프기도 합니다.

가을의 안개가 무거워지듯 첼로의 음은 더욱 진중하게 우리 마음에 평화를 주고, 나뭇잎은 낮게 떨어져 새로운 시대를 위해 흙과 하나가 될 것입니다. 그리고 긴 겨울을 지나 새봄의 희망의 싹을 틔울 것입니다.

주님

지금 삶의 중요한 결정을 하고

길을 떠나는 사람에게 평화를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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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등록 : 김영숙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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